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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전재성
Subject   사부대중과 진리의 수호
                           사부대중과 승가, 승원 그리고 진리의 수호
                                -초기불교의 관점에서-


                                                   전재성(한국빠알리성전협회 대표)

1. 초기불교에서의 승가

  초기불교에서 교단을 의미하는 승가(僧伽; Samgha)에 관하여 비구승가(比丘僧伽; Bhikkhusamgha), 비구니승가(比丘尼僧伽; Bhikkhunisamgha), 사방승가(四方僧伽; Cattu- disasamgha), 현전승가(現前僧伽; Sammukhisamgha), 승보(僧寶; Samgharatana), 성문승가(聲聞僧伽; Savakasamgha)등의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재가신자인 우바새(優婆塞; Upasika), 우바이(優婆夷; Upasika)의 승가란 말은 나타나지 않는다.
  더구나 승가안에 재가신도가 포함되는 것이 옳은지 포함되지 않는 것이 옳은 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도 않다. 사방승가는 시간적으로 삼세에 걸쳐 확대되고 공간적으로는 우주적으로 확대되는 보편적 승가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이 사방승가 안에는 재가신도가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방승가도 재가신도에 관한 언급이 없이 비구, 비구니 승가의 확장으로 규정되고 있다. 그리고 현전승가는 시간, 공간적으로 제한된 사방승가의 지역승가로서의 생활공동체이다. 이 현전승가 역시 비구 또는 비구니 승가이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재가신자인 우바새나 우바이가 없이는 사방승가와 현전승가의 이념이 성립할 수 없음을 경전은 분명히 하고 있다. 왜냐하면 출가자는 생활의 물자를 얻기위해 노동할 수 없음으로, 우바새와 우바이로부터 생활필수품인 의식주를 위한 생필품와 의약품(四資具)을 공급받아야 생활공동체로서의 현전승가가 유지되며, 우바새와 우바이로부터 승가람(僧伽藍), 승가람물(僧伽藍物), 방(房), 방물(房物)등을 기증받아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유지시켜야 ‘부처님을 상수로하는 승가’ 즉 사방승가가 성립할 수 있다.
  한편 승보라고 하는 것은 불교도의 귀의처로 삼귀의 라고 하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가운데 하나가 된다. 초기불교의 경전에서는 그 구체적인 범주가 언급되어 있지가 않다. 그러나 구사론(俱舍論)이나 대지도론(大智道論)에서는 그 범주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승보에는 비구비구니 승가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흐름에 들기 시작한 예류향(預流向)에서부터 열반에 도달한 아라한에 이르기까지의 네쌍으로 여덟이되는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자승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승보의 개념은 초기경전인 쌍윳따니까야에서 규정하는 성문승가의 이념과 일치한다; “세존의 성문승가는 훌륭한 실행자이며, 진실의 실행자이며, 화합의 실행자이니 곧 사상팔배를 지칭한다.(SN. II. 66)” 승가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바와 같이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제어하고 고귀한 지위에 든 여덟 종류의 참사람들의 모임을 승가라고 할 수 있다. 그 여덟 가지 종류의 참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성스러운 진리의 흐름으로 가는 사람(預流向)과 진리의 흐름에 든 사람(預流果), 천상에 가서 열반에 들기 위해 다시 한번 욕계로 돌아오는 지위를 향하는 사람(一來向)과 그 지위를 얻은 사람(一來果) 천상에 가서 해탈하여 욕계로 돌아오지 않는 지위를 향하는 사람(不還向)과 그 지위를 얻은 사람(不還果),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생에서 열반을 얻는 지위로 향하는 사람(阿羅漢向)과 그 지위를 얻은 사람(阿羅漢果)의 네쌍으로 여덟이 되는 참사람들(四雙八輩)를 말한다.
  그러나 용수가 규정하는 승보의 개념과 이 쌍윳다니까야에서 부처님이 규정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붓다는 결코 성문승가가 비구비구니 승가로 한정한다고 규정하지 않았으며, 글자 그대로 성문승가 즉 제자승가로서 정의했다는 사실이다. 제자승가라고 한다면 우바새와 우바이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시사하는 것은 진리의 흐름에 들지 못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는 성문승가나 승보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누가 참사람 또는 성자승인가를 가려내고 인정할 것인가는 난해한 문제에 속한다. 그래서 살다다비니비바사(薩婆多毘尼毘婆娑; 大正23. 506)에서는 귀의의 대상인 승보에 관하여 진속이제(眞俗二諦)의 구분을 하고 있다. 즉 제일의제승은 사쌍팔배를 의미하고 속제승은 사쌍팔배만이 아니라 범부승을 포함한다. 제일의제승이 의존하는 바는 속제승이므로 범부승에게도 존경을 표하고 귀의의 대상이 될수 있다고 논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밑바탕에는 재가신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엿볼수 있다.
   승가라는 이념이 불교공동체라는 가장 포괄적인 측면으로 분명히 등장하는 것은 아쇼카왕의 사르나트 칙령(Sarnat 勅令)에서 이다. 이 칙령에는 타종교와 구분되는 불교승가로서의 승가 즉 “모든 불교도의 공동체”라는 말이 분명히 등장한다.

2. 사부대중이란 무엇인가

  사부대중(四部大衆)이란 용어는 그렇다면 승가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사부대중은 분명히 초기불교에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 사부대중이란 말이 곧바로 사부승가란 용어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은 아니였다. 왜냐하면 모든 초기경전에서 사부대중의 중(衆; parisā)에 관해서는 승가란 말을 쓰지 않았다. 중이란 말은 단지 어원적으로 “둘어 앉는 모임이나 집회”를 뜻했다. 초기경전인 디가니까야에서는 “사문 고따마는 사부대중에게 공양받으며, 존경받으며, 공경받으며, 숭배받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부대중의 중(衆: Parisā)과 비구와 비구니 양중(兩衆)의 중(衆: Samgha)이 혼동된 것은 한역경전에서 양자를 동일한 중으로 번역한데 기인한 것이다. 그러다면 교단을 의미하는 승가의 중과 사부대중을 의미하는 중과는 사용용어의 어원적 의미처럼 엄밀하게 구분되는가? 그렇지 않다. 붓다는 맛지마니까야의 아쌀라야나경에서 “성직자만이 이 나라에서 원한을 품지않고 화내지 않고 자비스런 마음을 지닐 수 있는데 다른 계급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가?”라고 반문하면서 “성직자만이 최상의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저열하다. 성직자들이야말로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성직자들이야말로 청정하고 다른 계급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척파했는데 물론 그 논의는 바라문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한 것이긴하지만 이 논리는 불교의 출가승단이 성직자로서의 특권의식을 가질 경우에 동일한 비판의 화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직자와 재가자의 본원적인 평등을 엿 볼 수 있다.
  비록 사부승가(四部僧伽)라는 말은 없지만 초기경전인 앙굿따라니까야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수행승이여, 사자(四者)는 총명하고, 수행했고, 숙달했으며, 법을 지키고 법을 여법하게 실천하며, 승가를 장식한다. 그 사자는 누구인가? 그 사자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이다.(AN. II. 8)” "승가를 장식한다(samgham sobheti)"는 말은 승가를 빛내게하고 구성한다는 듯으로 사부대중의 구성원들이 승가를 성립시킨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제 가지의 말을 종합해보면, 승가는 제일의제로 보면 승속을 초월한 사쌍팔배의 성자승을 의미하지만 속제적으로 보면 협의의 의미로는 지속적인 수행공동체인 비구와 비구니 승가를 의미하지만 광의로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신앙공동체임을 증명한다.      
                
3. 승가와 다르마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Mahaparinibbanasutta DN. II. 100)에서는 붓다는 승가를 조성하려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으며, 승가가 자신에게 의존한다던가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붓다는 모든 다르마(法)는 안팎이 없이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으므로 특정한 승가에 귀의하기보다는 여래의 가르침인 다르마에 의존할 것을 유훈으로 남긴 바가 있다. 여래의 가르침인 다르마는 곧 진리를 뜻한다. 다르마를 통해 연기의 이법을 깨달음으로서 우리는 열반을 성취한다. 모든 현상, 사물, 존재, 세계, 정신적인 개념들은 모두 연기적인 특성을 지녔으므로 상호의존적으로 끝임없이 변화(無常)하고 불안정(苦)하고 항상 열려져(無我)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깨달음은 홀로 깨닫는 것이 아니고 연기라는 중중무진한 상호의존관계속의 깨달음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  
  깨달음은 설사 돈오일지라도 홀로 갑자기 깨닫는 것이 아니다. 돈오의 돈(頓)의 어원은 yugapad는 원래 두 마리의 소가 끄는 멍에를 의미하며, 그 개념이 발전해서 “동시에” 또는 “갑자기”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돈오는 붓다의 가르침인 연기의 법칙과 더불러 동시에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은 결코 연기법을 떠나서 결코 생명이나 인간관계를 떠나 비사회적인 독존 속에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하빠자빠디 고따미(Mahapajapati Gotami)의 비유경(Apadana)을 비롯한 몇몇 경전에 등장하는 “최상의 열반의 도시(nibbana- purattamam)"란 말은 궁극적인 깨달음인 열반에 대한 사회적이고 더 나아가서는 시민사회적인 특성을 잘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붓다 당시에 승려들의 처소인 가람은 비유적으로 환희의 도시(puro rammo)라고 불리웠다. 이러한 사실은 비록 비유적이긴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의 공동체적이고 시민사회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교단을 뜻하는 승가라는 말도 어원자체는 붓다 당시의 도시국가의 시민대표자들이 의회에 모여 공공의 관심사를 토의하는 회의를 뜻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당시의 밧지( Vajji)라고하는 국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대표자들은 자주 모여 상가(Samgha)을 개최하고 토론하고 화합으로 국사를 처리했으며, 불화가 생기면 그 쟁점을 다시 토의에 붙여 투표하는 형식을 취했다. 특히 그들은 관습법을 무시하지 않고 어른을 존경했으며, 여성과 이방인을 보호하고 영묘를 존중했으며, 성자들을 공경했으므로 붓다는 이상적인 국가로 생각했다. 그래서 붓다는 자신을 따르는 모임에도 상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불교의 교단운영은 율장에 상세히 명시되어 있는데 도시국가의 민주적인 시민사회의 운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러한 시민사회적 모임을 뜻하는 승가라는 말은 초기불교에 수용되어 여러 유형으로 등장하는 것은 시대적으로 불교의 흥기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부처님 당시에는 농경사회의 틀을 벗어나 무역과 상공업이 부흥하면서 도시국가적인 시민사회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던 시대였고, 대도시 중심으로 화폐경제가 발달하여 모든 분야에서 보다 긴밀한 상호의존적인 연기관계가 증폭되었던 시대였다. 따라서 여실지견에 의한 올바른 상호 의존관계는 시대적인 명제로 부상하고 있었고 붓다의 연기법은 이러한 본질을 꿰뚫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승가는 곧 시민사회적으로 다시말해서 민주적으로 상호의존관계를 실현하는 불교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공동체는 초기불교에서 “진리의 도시(dhammanagara)", "열반의 도시(nibbanapuro)", "환희의 도시(puro rammo)"등으로 불리운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불교공동체는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서 시민 사회의 핵으로서의 공동체로 성장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승단을 비구나 비구니의 승가로 한정시키려 했던 것은 ”자주 모여 많은 회합을 가질 수 있었던 그러한 승가에 편의적으로 붙여진 이름에 불과했다. 더구나 역사적인 불전결집이 비구승단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그러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공동체로서의 현전승가나 이념적 공동체로서의 사방승가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사부대중은 모두 승가를 장엄하는 상보적인 구성원으로 자주모여 회합을 갖는 공동체로 성장해갔다고 볼 수 있다.

5. 초기불교에서 승가와 승원의 성립

  초기교단에서는 승원은 필수적이거나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제자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전체적으로 승가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차츰 수행승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우기에 수행승들이 함께 모여 수행하는 일시적인 정주지로서 주처인 Avasa와 승원인 Arama의 두가지 형태가 생겨났다. 거기에는 수행승의 거주를 위한 작은 집이 Cullavagga에는 提婆의 五事로서 “비구들은 1) 숲 속의 거주자로서 마을에 들어가면 죄가 될 수 있다. 2) 걸식자로서 청식을 하면 죄가 될 수 있다. 3) 분소의를 입는 자로서 거사의 옷을 받으면 죄가 될 수 있다. 4) 나무 아래 사는 자로서 옥내에 거주하면 죄가 될 수 있다. 5) 물고기와 고기를 먹지않는 자로서 물고기와 고기를 먹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는 초기의 유행자들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비구생활의 승원화에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초기불교에서 vihara는 비구들이 명상하는 주거, 삼림에서의 주거, 일시적인 숙박소로서의 의미이외에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있었으며 Vihara는 원래는 이러한 가건물에 부여된 명칭이었다. 그래서 일인 또는 소그룹의 비구가 거주했으며 각 비구의 방은 Parivena라고 불렸다. Mahavagga:VI. 23. I
또한 비구에게 허용된 물건을 공동으로 보관하는 용방(kappiyakuti)이 있었다. Cullavagga VI. 4-9.
  
  대품의 安居犍度에는 Avasa의 경계결정, 구조, 단체생활을 위한 규칙을 취급하고 있는데 소위 주처 즉 Avasa는 주거를 의미한다. 초기단계에는 단순한 비를 피하기 위한 피난처에 불과했다. 안거건도에 따르면, 우안거로 허용된 장소는 외양간이나 캐러반(隊商)의 막사같은 곳이고 금지된 장소로는 나무 밑의 동굴, 나무가지, 노지, 와죄구가 없는 곳, 납골당, 우산밑, 항아리안에 거주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Avasa는 수행승들이 거주하는 일시적인 주처로서 우안거가 끝나면 황폐하게 내버려둔 곳이다.
  그것에 대하여 Arama는 본래 환희를 부여한다는 장소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마을이나 교외에 낙원, 과수원, 화원등으로 사용되던 것을 승가에 영구적으로 기증하여 명상과 토론의 장소로 쓰인 僧園 또는 승가람(samgharama)을 말한다. 이 Arama는 개인에서 승가로 이전되었지만 그 관리는 기증자가 자발적으로 그 재산을 관리 유지했다. 대품의 藥犍度에는 Mahavagga VI. 15. 1-4
Pilindavaccha가 Rajagaha에 산협에 동방(洞房)를 만들 때에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500인의 淨人(aramika)을 시여하여, 淨人村(aramikagāma)을 만들어졌고 그들은 승원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들은 淨人主(aramikapesaka)에 의해서 통솔되었다.
소품의 臥座具犍度에 의하면, Mahavagga VI. 4. 9-10
와좌처제정의 기원에 관하여 설하고 있다. 승원 가운데 정사가 건립되기 전에는 수행승은 숲 속이나 나무 밑이나 산중이나 동굴이나 산굴이나 무덤가나 산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에 거주하며 아침 일찍 그곳에서 나와 경행을 하며 관법을 수행했다. 이 무렵 Rajagaha에 장로가 Vihara를 기증을 받아 줄  것을 부처님에게 요청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5종류의 와좌처(panca senasani 또는 五種의 僧園 panca leṇani=精舍vihara, 平覆屋addhayoga, 樓閣pasada, 樓屋hammiya, 窟院guha)를 허가해서 장자가 하루에 60개의 정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정사의 건축구조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간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의 와좌처는 춥고 더운 것, 맹수나 뱀, 모기, 비나 폭풍, 열기를 차단하고 선정에 들어 정관하기 위해 필요했던 만큼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Ārāma에 있는 수행승의 대중들은 종교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모두가 참여하는 회당이 필요했다. 布薩犍度에 의하면, Mahavagga, II. 8. 1
포살을 위해 집회하는 장소로서 규정하고 있다. 처음에는 수행승의 개별적인 방인 Parivena에서 바라제목차를 암송했지만 각 비구가 어디에서 포살이 행해져야하는 가에 대해 혼선이 왔기 때문에, 미리 장소를 표시하여 각 방에서 암송이 금지되고 승가에서 바라는 Vihara를 포살당(uposathagara)으로 정해서 포살을 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또한 포살당이 작아서 전원을 수용하지 못한 때에는 포살당의 마당을 결계하여 사용되었다. 우리는 초기의 전설에 Ārāma의 구체적인 예를 볼 수 있다.

1) Veḷuvanarama(竹林精舍)

대품의 大犍度에 의하면, Mahavagga, I. 22. 1
세존께서는 성도후에 Rajagaha의 Latthivanuyyana(竹林園)의 Supatitthacetiya(善住靈廟)에 거주했지만 Magadha의 Seniya Bimbisara가 “도시에서 멀지 않고 왕래가 편하고 모든 원하는 사람의 왕래가 용이하고 낮에는 시끄럽지 않고 밤에는 말소리가 적어 인적이 끊기고 사람을 떠나 조용히 선정에 들기 좋은 곳”이라는 조건으로 Veḷuvana를 선택하여 비구승가에 기증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Arama였다.

2) Jivakarama

대품의 衣犍度에 의하면, Jivaka는 창부 Salavati가 버린 아이로 Abhaya왕자에 의해서 진흙더미에서 발견되어 당시에 학문의 중심지 Takkasila에서 의학을 연구했다. Rajagaha에 돌아와 의사로서 부를 축적했다. 부처님의 인격에 감동을 받아 질병을 몇번 치료해주었을 뿐만아니라 그는 자신의 소유의 라자가하의 Ambavana를 기증하였다. 그것을 Jivakarama라고 한다.

3) Ambapalivana(菴婆薛林)

VV    



Vesali에 위치했다고 하는 숲은 대품의 藥犍度에 의하면 세존께서 최후의 여행을 행할 때에 Ambapali가 부처님께 승가에 기증한 것이다.

4) Udumbarikarama(優曇婆羅林)

Udumbarikarama는 부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행자를 위해 설치된 arama였다. Udum- barika sihanada Suttanta에 의하면, 여기서 부처님은 Nigrodha라는 유행자에게 고행의 잘못에 관해 설하고 계율의 수호와 선정에 관해 설했다.

5) Kukkuṭarama(鷄林精舍)

Pataliputta의 유원지로서 초기불교시대부터 부처님이나 비구의 수행처였다. Kosambi의 상인 Kukkuta에 의해서 지워진 ārāma여서 鷄林(Kukkuṭarama)이라고 불렸다. 훗날 Asokarama는 옛 Kukkuṭarama 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6) Ghositarama(美音精舍)

Kosambi의 Ghositarama는 Ghosita에 의하여 건축되어 기증된 것으로 부처님도 점차 이곳을 이용하였으나 후에 Devadatta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Ajatasattu를 이용할 것을 생각하기도 했다.

7) Pavarikarama(망고나무 승원)

Ghosita와 Kukkuta의 친구로서 Kosambi의 Pavarika도 망고 숲을 기증하였는데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Pavarikarama했다.

8) Jetavanarama(Anāthapindikassa arama: 祇樹級孤獨園)

소품의 臥座具犍度에 의하면, Cullavagga, IV. 4. 1-10.
Anathapindika는 라자가하의 장자의 처남이었는데 장자의 집에서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대되었을 때에 부처님의 인격에 감동을 받아 후에 승원을 물색하던중 Jeta 태자의 숲이 적당한 것을 알고 왕자에게 그 땅을 팔 것을 요구하였으나 금으로 숲을 덮어도 팔 수 없다고 하자 Anathapindika는 금으로 땅을 뒤엎기 시작했는데 이에 감동을 받은 Jeta태자가 숲을 기증함으로서 성립된 승원이다.

9) Badarikarama(대추나무 승원)

Kosambi 근처의 Ārāma인데 Khemaka가 병들었을 때에 있던 곳인데 Ghositarama에서 수행승들이 그곳을 방문했다.

10) Nigrodharama(벵골보리수 승원)

Kapilavatthu 가까이에 부처님께서 성도한 해에 이 곳에서 지냈는데 그것을 석가족의 Nigrodha가 승가에 기증한 것이다.  많은 석가족의 출가자가 이곳을 방문했고 Mapajapati Gotami가 승단의 입단을 요청한 곳도 이곳이나 처음에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상의 초기전승의 arama는 Rajagaha, Vesali, Pataliputta, Kosambi, Savatthi, Kapilavatthu의 도시근교에 소재했다. 그래서 도시로부터 멀지 않고 왕래가 편하고 조용해서 선정에 몰두 할 수 있는 곳이었고 국가 권력자나 부호들의 기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가운데 Rajagaha의 Jivakarama, Savatthi의 Jatavanarama, Kosambi의 Ghositarama는 고고학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Jivakarama의 발굴 결과 승원은 사각형의 담에 둘러싸여 있고 넓은 마당을 둘러싸고 병행한 두 개의 타원형의 건물과 두 개의 긴 강당의 기초가 발견되고 쇠못, 적토의 둥근 벽돌, 동물의 테라코타, 조잡한 도기등이 발견된다. 또한 Ghositarama의 발굴결과 그 유적인 BC. 6세기에서 AD. 4세기까지 성립되었는데, 사변형으로 일열로 나란히 있는 방사와 거기에 부가된 베란다가 있었다. 내부의 한 가운데에는 주탐이있고 몇개의 종탑에 둘러싸여 있었다. 최초 거주기의 유물가운데 북방의 검게 빛나는 토기가 발견되고 토환을 사용하지 않고 기둥을 흙 가운데 박은 갱(坑)이 특색이 있다. 주탑이  최초로 건립된 것은 B.C. 5세기였다.
그리고 참고로 율장 대품의 安居犍度에 Mahavagga III. 5. 5-6
묘사된 Jetavanarama의 시설은 후기에 완성된 승원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1) 精舍(vihara), 2) 平覆屋(addhayoga), 3) 殿樓(pasada), 4) 樓房(hammiya), 5) 窟院(guha), 6) 房舍(parivena), 7) 倉庫(kotthaka), 8) 勤行堂(upatthanasala), 9) 火堂(aggisala), 10) 用房(kappiyakuti), 11) 廚房(vaccakuti), 12) 經行處(cankama), 13) 經行堂(cankamanasala), 14) 우물(udapana), 16) 煖房(jantaghara), 17) 煖房堂(jantāgharasala), 18) 연못(pokkharani), 19) 庭園(arama), 20) 庭園地(aramavatthu)    
오늘날의 암자와 같은 건물은 굴원(guha)이라고 불리었는데 그 종류로는 기와굴, 석굴, 목조굴, 토굴(itthakaguha, silāgūha, daruguha, pamsuguha)이 있었고 자연의 동굴은 없었다.  
이렇듯 승원은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필요에 따라 불탑이 세워지고 각나라에서는 그 실정에 맞도록 발전되거나 경제적인 필요에 따라 변형되어 왔다.

4. 승가의 개혁과 진리의 수호

   승가의 개혁은 모름지기 승가의 초기적인 이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 이념을 시대에 맞도록 다시 구현하는데 있다. 불교도의 공동체인 승가라는 말은 자주 환희의 도시, 열반의 도시, 진리의 도시로 불리웠다. 대반열반경에서 붓다가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것 중의 하나가 “자주 모여 회합을 갖는(abhinham samnipata samnipatabahalo)" 소위 시민사회적인 승가였다. 불교의 공동체는 이러한 시민사회적인 모범을 그대로 따르는 불교적인 공동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불교도의 승가는 아쇼카왕 칙문에도 나와 있드시 불교승가의 이념을 받들어서 전 불교도 사부대중이 화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주 모여 회합을 갖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물이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연기적인 관계에 있음을 확인시키며 승가공동체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공동체가 시민사회적인 공동체와 다른 점은 상호의존관계를 여실지견하기 위해서는 불교도들은 보다 객관적이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제거해서 올바른 상호의존관계를 지향해 나가야한다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 윤리적인 가르침인 계와 정신적인 수행인 정과 연기법에 대한 통찰을 뜻하는 혜의 삼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일반론은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다만 사부대중이 자주 모여 많은 회합을 갖는 대화모임을 통해 승가는 과거 보다 엄청나게 증가된 정보사회에서 보다 긴밀한 상호의존관계를 올바로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민사회의 기본적인 진리수호에 가장큰 장애가 되는 것은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하는 도그마에 입각해서 상호의존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맛지마니까야의 짱끼경(MN. 95)에서 붓다는 진리의 수호에 관하여 이와 같이 말했다;
  “만일 나에게 믿음이 있다면 ‘이와 같이 믿는다’라고 말하며,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좋아함이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좋아한다.’라고 말하며,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배운바가 있다면 ‘나는 이와 같이 배웠다’라고 말하며,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수호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사물에 대한 분석이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사물에 대해 분석한다‘고 말하며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수호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에게 이념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이와 같이 나는 이념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말하며,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결정적으로 수호하지 않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도그마에 입각한다면, 그 도그마는 어떠한 집단이건 그 구성원을 외부적으로 증오에 사로잡히게 하고 내부적으로 노예화시킨다.  불교도의 승가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도그마에서 벗어나 상호의존관계의 흐름속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여법하게 개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한 사부대중이 되도록 자주모여 많은 회합을 가지면서 진리의 도시, 열반의 도시, 환희의 도시를 만들어가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의 수호이고 불교자주성의 확보이며, 지속적인 승가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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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성
  200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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