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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전재성
Subject   역사적인 사건 속의 붓다와 인간의 욕망
역사적인 사건 속의 붓다와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성찰
(감신대 기독교백주년기념관 강연 원고 2002년 11월)



                                    퇴현 전재성(한국빠알리성전협회 대표, 철박)


종교의 보수성은 창시자의 언어를 보편적인 로고스로 보고 그것을 절대화시킴으로서 나타난다. 기독교가 그 로고스를 수천년간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알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과 결합하면서 완결주의적인 폐쇄성을 갖게되었듯이, 불교는 수천년간 그 로고스를 붓다고싸의 찰나멸론이나 용수의 공사상과 결합하시키면서 그 완결주의적인 폐쇄성을 갖게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종교다원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는 종교적인 세계와 현실의 분리를 가져왔고 종교상호간에도 배타적인 입장을 키워왔다.

불교의 형이상학적인 이론들은 닫혀져있지만 붓다의 대화가 남긴 가르침은 현실적인 사건이 그렇듯이 인과적이고 시대를 뛰어넘어 열려져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는 이러한 사건의 거울 속에 우리를 비추어 봄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초기불교가 전해진 남방에서는 붓다고싸가 위대한 주석가로 등장하면서 경전의 주석을 달았지만, 그는 관념론자로서 위대한 학승일 수는 있어도 붓다의 가르침을 박제화하고 신화화하여 모든 원인을 전생설화에 가탁함으로서 가르침을 몰역사화해왔다. 대승불교는 이러한 아비달마적인 소승불교에 대한 이념투쟁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승경전은 본래의 뜻과는 무관하게 관념적이고 더욱 신화적이며 배타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붓다의 말을 빌자면 “갑옷같이 둘러싼 자아”를 만들어 온 것이다. 자아라는 것은 욕망의 한 형태, 편협한 완결주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역사적으로 불교는 이론이 완벽해질수록 우리를 형이상학의 감옥, 동어반복적인 언어의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붓다의 연기법에 따르면 진리는 사건 속에서 항상 열려있는 것으로 새로운 상황이 닦쳐올 때에 새롭게 재해석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초기불교의 경전들을 읽으면 붓다의 가르침을 사건 속에서 열려있는 진리로 온전히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시대의 화두는 에릭 프롬이 말하는 소유나 존재냐의 문제보다 존재냐 원인이냐의 문제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욕망에 의해 인식되는 존재는 언어와 깊이 결합되어있다. 그것들은 영원한 배타적인 가치를 주장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전투적인 방어에 돌입하게 하고, 그 가치는 우리의 욕망에 의해서 창출되고 침해당하면 분노라는 사건을 일으킨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와 언어는 본질적으로 탐욕적이고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고 고통에 가득찬 것이다. 이러한 존재와 언어의 갑옷같은 자아를 열어 제끼는 길은 사건을 이해해서 그 원인을 묻는 것이다. 오늘날 같은 종교 내부에서의 종파간의 대화의 단절이나 타종교와의 상호몰이해는 존재와 언어의 갑옷같은 자아에 갇혀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존재가 그렇듯이 언어도 하나의 사건이다. 그 의미는 역사적인 사건의 문맥 속에서만 분명히 들어난다.
  그러나 오랫동안 상아탑의 형이상학 속에서 이러한 관점은 기독교나 불교나를 막론하고 오랫동안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요즈음 국내 불교학계에서는 18세기에 이미 일본의 도미나가 나카모도가 제기한 적인 있는 대승불교가 불설이냐 비불설이냐는 쾌쾌묶은 논쟁을 겨우 시작하였다. 이제 다시 우리가 존재와 언어의 감옥에서 니전투구를 해본들, 현실과는 무관한 형이상학의 족쇄가 점점 더 우리를 죄일 것이다. 불교평론, 2002년 여름.가을:대승비불설론과 현대의 경전해석학, 101쪽:김용표는 대승불교가 비불설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대승불교는 창조적인 불설이며 그 이유로 첫째, 반야경이 경전의 의미를 경계가 없는 지평까지 열어놓았기 때문이고, 둘째, 대승경전은 끝없이 열려져 있으므로 인간의 언어를 초월해서 존재한다. 셋째, 경전의 작자는 중요하지 않고 깨달은 자가 설했으므로 그 언어는 역사적인 붓다의 언어와 동일한 효력을 지니다. 넷째, 붓다의 설법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붓다의 가르침이다. 다섯째, 경전은 듣는 자를 위한 것이므로 독자가 바로 경전의 정법성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여섯째, 경전 언어는 본래 실체가 없어 공한 것이다. 여래는 어떠한 법도 어느 누구에게도 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진리의 일상성을 망각하는 형이상학적 논쟁을 유발할 뿐이다.
오늘날 특히 불교도들은 대부분 개인으로서의 붓다와 그의 생애에서 단명한 사건들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시간을 초월한 그의 가르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초월적 가르침이 우리의 일상적인 사건의 현장에 반영될 때에는 대단히 무력해진다는 사실에 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가 살았던 시대나 붓다가 살았던 시대, 그 위대한 성자들이 살았던 시대가 그들의 존재만으로 우리가 살아왔던 20세기나 오늘날의 시대보다 대단히 “좋은 시대”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욕망이 존재하는 한, “좋은 옛시대”의 역사란 없었다. 예수가 살았던 이스라엘이나 붓다가 살았던 인도도 예외는 아니였다. 노자가 살았던 중국은 더욱 비참했다. 새로운 해탈의 가르침에 커다란 관심을 보인 시대란 역설적으로 더욱 비참한 시대였다. 그렇지만 우리와 당시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지적으로나 도덕적인 수준이 다르지 않은 시대였다. 세상에 대한 견해가 조금 다르고 자연력에 대한 기술 정도가 달랐을 뿐이다. 그들은 우리와 동일한 욕망과 희망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나 붓다를 신으로 파악하고 그들이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 인간으로 걸어갔던 길과 같은 높이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그들을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존재로 파악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도고대역사에 대한 지지부진한 연구로 인해서 역사적인 붓다에 대한 연구는 수천년간의 상아탑의 형이상학에서 끌어져 내려 최근 20년에 겨우 그 위대한 사상가를 그들의 시대와 그 환경을 반영하는 사건의 맥락에서 조명하기 시작했다. BC 6-5세기의 붓다 시대는 최근의 상세한 연구 성과에 따라 빛의 조명을 받고 있다. 붓다는 더 이상 공중을 부유하는 신비의 성자가 아니라  말하자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환경을 지혜로운 수완으로서 극복하며 평화의 가르침을 전한 현명한 사람이었다 극히 최근에야 역사적인 붓다의 연구방법을 슈만(H. W. Schumann)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1. 불교문헌에서 자주 지적되고 있는 과거와 미래의 비역사적인 붓다에 관한 어떠한 진술도 배제한다. 2. 역사적인 붓다 개인을 둘러싼 전설적인 이야기를 배제한다. 단 그 속에서 역사적인 사건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을 때는 제외한다.3. 위대한 성인의 비신화화하여 가르침의 전파를 가능하게 하고 성공하도록 이끈 당시의 문화와 정치 사회적 조건을 취급한다.

붓다의 출현 당시의 사회적 조건

붓다의 출현 당시에는 이미 철기의 도입(BC. 750-700)으로 Geschichte Indiens:Hermann Kulke, Dieter Rothermund: Verlag W. Kohlhammer, Stuttgart. 1982 62쪽.
접어들면서 대국들이 생겨나고 무역이 활발해져서 사회적인 부가 축적되어 강대국이 생겨나고 차츰 전쟁과 유혈을 통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어 가는 시기였다. 당시에 가장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은 수도인 라자가하의 남쪽에는 거대한 노천 철광석 광산이 있었고 동남쪽에는 황동광이 출토되었는데 그것으로 강력한 전제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 빔비싸라왕(BC. 540-490)은 앙가국을 정벌하면서 갠지스강변의 무역로를 확보하고 국가적인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꼬살라국의 빠쎄나디왕은 그들은 전사계급으로서 권력을 위하여 주변의 약소국의 병권을 쥐고 사제 계급인 바라문과 결탁하여 거대한 500마리의 소, 500마리의 말, 500마리의 염소등을 학살하는 희생제를 지내며 전제정치를 강화하고 있었다. SN. I. 75;雜阿含 46권 13(大正 2. 338a, 잡1234) 참조;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 커다란 제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5백 마리의 큰 황소와 5백 마리의 숫소와 5백 마리의 암소와 5백 마리의 산양과 5백 마리의 양이 제사에 쓰이기 위해 기둥에 묶여 있습니다. 또한 왕의 노예와 심부름꾼과 일꾼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짐승들을 도살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공포에 떨며 슬픈 얼굴로 울면서 제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최대 국가들의 왕이었던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이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모두 붓다의 재가신자로서 경건한 왕이되었으나 여전히 붓다가 태어난 싸끼야 공화국도 꼬쌀라 국의 속국이었고 그들 강대국의 왕들은 비록 비폭력적인 붓다에게 귀의했으나 꼬살라 국의 빠쎄나디왕은 그의 아들 비두다바에 의해서, 그리고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그의 아들 아자타삿투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이들 강대국들은 붓다 당시에도 수시로 패권을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SN. I. 82;雜阿含 46권 15(大正 2. 338b, 잡1236) 참조; ① 붓다 당시에 양대국이 전쟁을 해서 한번은 마가다국이 이겼다. 세존이시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4군을 무장시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을 공격하기 위해서 까씨로 쳐들어왔습니다. 세존이시여,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4군을 무장시켜 까씨로 쳐들어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4군을 무장시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를 까씨에서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에게 이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싸움에 패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자신의 수도인 싸밧티로 돌아왔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는 나쁜 벗, 나쁜 친구, 나쁜 동료를 갖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에 비해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착한 벗, 착한 친구, 착한 동료를 갖고 있다. 수행승들이여, 그러나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오늘 패자로서 괴롭게 잠을 이룰 것이다. 법구경의 ”승리는 원망을 낳고, 패한 자는 잠을 못이루네. 이기고 지는 것을 버리면, 마음 편히 잠을 이루네.“ ② 또한 번은 꼬살라 국이 이겼다: 세존이시여,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와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를 이겨서 그를 생포했습니다. 그때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이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는 가만히 있는 나에게 해를 끼친다. 그러나 그는 나의 조카이다. 나는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의 모든 코끼리 부대, 모든 기마 부대, 모든 전차 부대, 모든 보병 부대를 빼앗고는 그들을 산 채로 풀어주면 어떨까.’ 그래서 세존이시여, 꼬쌀라 국의 빠쎄나디 왕은 마가다 국의 왕이며 베데히 왕비의 아들인 아자타쌋뚜의 모든 코끼리 부대를 빼앗고 모든 기마 부대를 빼앗고 모든 전차 부대를 빼앗고 모든 보병 부대를 빼앗고는 그들을 산 채로 풀어주었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뜻을 아시고 곧 이와 같이 시를 읊으셨다. “자신에게 이로움이 있으면,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네. 다른 자가 빼앗으면 빼앗긴 자는 또 남의 것을 빼앗네. 죄악의 열매가 익지 않는 한, 어리석은 자는 기회라고 생각하나, 죄악의 열매를 거둘 때, 어리석은 자는 괴로워하네. 죽이는 자는 죽임을 당하고, 이기는 자는 패하며, 욕하는 자는 욕지거림을 당하고, 화내는 자는 미움을 받네. 행위는 돌고 또 돌아 빼앗긴 사람이 다시 빼앗네.”
비두다바는 붓다가 살아있을 당시에 싸끼야 공화국을 멸망시겼고 아잣타삿투는 한 때 붓다를 살해하려고 했다가 후회하고 붓다에게 귀의했고, 나중에는 붓다의 사후에 붓다가 허락하지 않은 밧지연합국을 멸망시켰다. 불교에 귀의한 그들 왕들도 현실의 역사에서는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적인 변동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편 초기 베다 시대에 제사는 신들의 의례적인 축제로서 인식되었다. 인도 아리안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아리야(arya)라는 말은 '손님을 환대하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또한 신들은 그들의 환대 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종교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세속적인 눈으로는 신들이 공중에서 내려와 제주를 방문하여 제단같은 제장의 자리에 앉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 신들은 경건하게 제주에게서 음식을 대접받고 쏘마를 즐기고 감사의 표시로 태양이 매일 떠오르게 하고 비를 내리게 하고 승리와 복지를 보장하고 제주가 성공하고 자손이 번창하고 많은 가축과 장수와 건강을 보장하는 제사에 대한 보답을 행한다. 신들의 제사에 대한 보답은 신에게 기원할 때에 얼마나 완벽하게 실수를 하지 않는냐에 달려있었다. 그것은 빛나는 존재인 신들의 기원과 향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제사에서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다지게 하는 것은 제의적인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제주의 의도는 아니지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올바른 형태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주가 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권장되었다. 주술적인 말(brahma)의 형식과 지식의 관점 위에 제사를 위탁받아 진행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의의 기술자, 의례의 전문가로 여겨지게 되어 처음에는 직업적인 명칭을 얻게되고 나중에는 계급적인 명칭(brahamna)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바라문의 제사장이 의식을 잘못 집전하거나 찬가를 왜곡함으로서 제주에게 화를 입힐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자를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정된 바라문에게 많은 보수를 약속하고 호화로운 음식을 대접하여 좋은 분위기 속에서 제사를 집행하도록 배려했다. 그래서 한때에 바라문 사제의 한 달 수입이 궁전의 문지기의 월급의 8000배에 이르렀다.  

특별히 바라하트(바르후트) 탑묘의 조각은 기원전 6세기경의 인도도시에 대한 인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 당시의 도시는 강들 위에 놓여있었고 평지가 허용된다면 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대인도에서 원형도시계획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였다. 도시는 상당한 넓이와 깊이를 갖고 있는 강에서 물이 공급되는 해자로 둘러 쌓여있었다. 도시의 시장 에는 좀더 사치스럽고 세련된 물건을 파는 가게와 작업장이 있었고, 각각 자신의 거리에 은행가, 금세공, 아이보리 세공사, 의복장사, 향료장사, 놋쇠와 철을 파는 장사, 쌀장사, 향신료와 사탕과자 장사들이 있었다. 가내공업의 부문과 모든 상거래는 넓은 범위에서 조정기능을 담당하는 쎄니라는 길드로 조직되어 있었다. 길드는 생산과 판매, 고정가격의 문제들을 결정했고 왕조차 그것을 받아들였다. 가장 부유한 길드는 물론 은행가들의 길드였다. 그들의 주요한 수입은 돈을 빌려주고 받는 고정된 이율의 이자였다. 결혼식때의 딸의 지참금과 같은 완전히 보장된 신용대출에는 15%의 이율이 붙고 부분적으로 보장된 외상에는 일년에 60% 의 이율로 부를 증진시킬 수 있었다. 상업적인 신용대출은 높은 위험성 때문에 그 이율이 훨씬 높았다. 대상들을 지원하는 대출에는 일년에 120%, 행상무역에는 240%의 높은 이율이 부과되었다. The Historical Buddha:H. W. Schumann:Trns. M. O'C. Walshe:  ARKANA; New York 1989
배타적으로 거의 상인계급(vessa)에 속하는 대출업자는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이 아니였지만 영향력의 측면에서는 지도자들에 속했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지역 길드들의 제일인자(대부호:mahasetthi)가 SN. I. 91;雜阿含 46권 12(大正 2. 337b, 잡1233) 참조; [빠쎄나디] “세존이시여, 싸밧티에서 어떤 백만장자가 죽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으므로 내가 그의 유산을 몰수하여 왕궁으로 가져다 놓고 왔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에게는 금이 8백만 냥이나 있는데 은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그 백만장자는 쌀겨로 만든 죽을 먹었고 세 조각으로 기운 대마옷을 입었으며 나뭇잎으로 덮개를 한 낡은 수레를 타고 다녔습니다.” 곡물도 재산도 금과 은도, 또한 어떠한 소유도, 노예, 하인, 일꾼 또는 그의 친인척도, 모두 놓고 가야 하네. 몸으로 행하는 것, 입으로 행하는 것, 뜻으로 행하는 것, 그것은 그 자신의 것으로, 자기 자신을 쫓아가네. 그림자가 떠나지 않듯이. 착한 일을 해서, 내세를 위해 공덕을 쌓아라.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의 의지처가 되리.”

되었고 따라서 그 지역의 상공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쌍윳따니까야에 나오는 큰 부자[Mahaddhana]라는 경전을 살펴보자  “큰 부자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왕족도 감각적 쾌락에 만족하지 못해 서로가 서로를 탐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붓다 당시에 베살리에서 가장 큰집은 경전에서 자주 언급되었드시 기생의 집이었다. 고대인도에서는 매춘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었고 경멸적인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관용되었다. 예술적인 도시의 기생(ganika)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예를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암바빠리는 아름답고 고상했을 뿐만아니라 유모가 있었고 남자들을 그녀의 예술과 문학으로 유혹하는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전성기에 그녀는 하룻밤의 사랑에 대한 댓가로 50마리의 젖소에 해당하는 화대, 지금 돈으로 계산하자면 억대를 벌었다.

  중앙 구역의 전사계급 중심의 행정관료와 그들의 안녕을 보장하는 사제 계급들의 집들은 단단하고 잘 지어졌고 곳곳이 그림과 장신구로 잘 치장되었으나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갈수록 그 모습이 달라졌다. 교외에는 노예계급에 속하는 노동자들과 하인들이 진흙집에서 설기게 짠 대나무집에서 살았다. 그들도 자신들의 장사에 따라서 무리지어 살았다. 목수들, 가구장이, 수레공, 나무조각가, 연장만드는 자, 금속 주물공, 석공, 직조공, 염색공, 재단사, 도공, 피혁공, 칠장이, 화초재배자, 요리사, 이발사, 목욕업자, 세탁업자, 도시의 봉사자들의 거리가 있었다. 계급의 구조 밖에 있어 사회적 접촉이 없는 계급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을 접촉해서는 안된다는 불가촉성의 개념은 아직 사회적으로 성립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가촉민에 대한 이야기는 수세기 이후에 성립한 자따까(Jat. 377)에만 언급되어 있다. 성곽밖에는 숲이 있었고 아주 가난한 자들이 땔감을 수집하거나 쇠똥을 수집하는 자 또는 아마도 부유한 자들의 정원에서 풀을 자르는 임시로 고용되어 일하는 자들의 집이 있었다. 그리고 유행하는 수행자들이 쉴 수 있는 숲과 그늘이 있었다. 손질하지 않고 결발한 머리를 한 그들은 영혼의 지적이고 미묘한 모험을 하는 자들로서 베다의 노래와 바라문의 제식을 비웃으며 깨달음을 찾아 집없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종교운동과 붓다의 출현

고대 북인도의 다신교적인 베다 전통의 사회는 왕에게 전쟁에서의 승리와 번영을 빌어주고 대신 그 제사에 받쳐지는 공물로 Stn. 2. 7; 이러한 공물에는 침구, 화려한 의복, 수레, 호화로운 주택과 잘 치장한 여자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소유를 늘이고 쾌락을 추구하는 제식주의에 묵여있었고 인간이 생각하는 선이라고 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자비보다는 현세나 내세에서의 제사의 공덕에 달려있다고 사상에 의존하고 있었다. 한편 무역과 상공업의 발달로 축적된 사회적인 부는 권력과 감각적 쾌락을 향수하는 것과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제사 이외에 적절한 윤리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부를 움켜쥐고 죽어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고행주의가 기원전7. 8세기 등장했다. 이것은 그들의 죄의 참회운동이 아니라 그들이 기존의 물질적인 제사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영적인 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물질적인 제사를 내면적인 제사로 바꾸어 고행을 통해 열을 창출하여 심리적 힘의 축적해서 새처럼 날거나 물위를 걷거나 담을 통과하거나 먼 대상이나 과거와 미래를 아는 신통력을 키우고 나아가 절대자와 합일하는 것이 목표로 하는 출가자들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제사에 공덕이 없다는 극단적인 결정론이나 무인무과론을 전개하면서 가족을 대가족에게 맡기고 영적인 자유와 새로운 지식의 추구를 찾아 유행하는 수행자들이 있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제사를 그들은 모두 소유와 가족을 버리고 자유롭게 유행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당연히 제사중심의 보수적인 종교에서는 신들에 대한 위험한 경쟁자로 인식되었다.  
붓다는 이러한 새로운 영적인 운동에 매력을 느껴 고행적인 수행자로서의 영적인 자유의 길을 택하기 위해 사문의 길을 택했다. 그는 “재가의 삶은 더러운 곳이고, 수행자의 삶은 자유로운 공간이다.”라고 진술했다.
  씻다르타는 아들을 출산하여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고 출가한 것이다. 사문유관후에 출가한 것은 다소 신화적인 것이고 밤중에 머리르 자르고 아노마강에 이르렀다는 것은 단순히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싯다르타는 첫날을 아우삐야 근처의 야외에서 보냈다. 아노마강은 지금의 아우미강으로 당시에 말라족의 영토에 속했고세 왕국의 영토를 지나다야했다. 쑷도다나와 양모인 빠자빠띠는 싯닫타의 출가의도를 어려서부터 알았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MN. 26. 16)
싯다르타은 젊었을 때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사회를 경험한 왕자로서 행정과 사법에 대한 사회적인 교육을 받았으며 살생과 독둑질, 간음과 위증과 형벌, 전쟁 등의 인간사회의 괴로움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괴로움에 대하여 궁극적인 질문을 ‘왜 사람들은 스스로 번뇌에 묶여 있으면서 번뇌에 묶여 있는 것을 구하는가?“라고 고민을 해왔다. 그래서 그는 출가해서 선정주의자로서 그리고 고행주의자로서 사문의 길을 택해서 6년간에 걸쳐서 수행을 했으나 마음의 평화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젊은 날의 체험이 떠올랐다. 농경제 행사중의 보습에 찟겨져나가는 벌레들의 잔혹한 삶을 보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렸을 때에 사유와 숙고가 일어난 것을 체험했다. ‘나의 아버지 싸끼야 족의 왕이 농경제 행사를 하는 중에, 나는 장미사과 나무의 서늘한 그늘에 앉아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고, 멀리 떠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는데,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일까? MN. 36    

  이렇게 해서 그는 인간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35살에 가서 최초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성찰에 들어감으로 제사주의자이나 선정주의자들은 하늘나라에 가려는 욕망에 묶여있고 고행주의자들은 자신의 좌절된 사회적 욕망을 전지성의 획득과 같은 신통력으로 보상하려는 또 다른 욕망에 묶여있다는 것을 통찰했다. 모두 불가능한 욕망에 묶여있는 것이다. 그는 욕망을 버리고 사유와 숙고를 통해 연기의 법칙이라는 중도를 발견하게 된다. 제사주의나 고행주의 속에는 욕망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그는 제사주의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망의 깊이와 그 위험과 그 재난, 고행주의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욕망의 깊이와 그 위험과 재난을 보았다. 붓다가 본 당시의 인간의 욕망과 그 고통에 대한 성찰은 곧 사회상황에 대한 통찰이었다. 붓다에 의하면 욕망은 사회현상 속에서 사건으로 들어나는 것이다. 베란자의 장자들에 대한 경 Veranjakasutta:MN. I. 290;漢譯에는 類似한 經이 없다.
을 보면,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에 전념하고 살아있는 존재에 대하여 자비심이 없었고, 마을에나 또는 숲에 있는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주지 않은 것임에도 남몰래 훔치고,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있고,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있고,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고, 형제의 보호를 받고 있고, 자매의 보호를 받고 있고, 친족의 보호를 받고 있거나, 이미 혼인했거나, 주인이 있거나, 법의 보호를 받거나, 심지어 약혼의 표시로 꽃다발을 썼거나 한 여인과 관계하고, 법정에 불려가거나 모임에 나아가거나 친지 가운데 있거나 조합에 참여하거나 왕족 가운데 있거나 증인으로서 질문을 받아, ‘오! 이 사람아, 그대가 아는 것을 말하라.’라고 하면, 그는 모르면서 ‘나는 안다.’고 대답하고, 알면서 ‘나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고 말하며, 보면서 ‘나는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그는 자신을 위하여, 혹은 타인을 위하여, 혹은 뭔가 이득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 여기서 들어서 저기에 말하여 이들을 파괴하고, 혹은 저기서 들어서 여기에 말하여 저들을 파괴하며, 화합을 파괴하고, 사이를 갈라놓는 것을 돕고, 파란을 좋아하고, 파란을 기뻐하고, 파란을 일으키는 말을 하고, 거칠고 난폭한 말로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분노하게 하며, 스스로 분노하여,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와 같은 말을 하고, 때맞추어 말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지 않고, 의미를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말하지 않고, 계율을 말하지 않고, 때아닌 때에 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고, 무절제하고, 유익하지 않은 말을 하고, ‘아,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나의 것이면 정말 좋겠다.’라고 다른 사람의 부와 재산을 탐하거나, ‘이 사람은 살해되고 피살되고 도살되고 파멸되어 존재하지 않길 바란다.’고 해칠 의도를 갖고, ‘보시에는 공덕이 없다. 제사의 공덕도 없다. 공양의 공덕도 없다. 선악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마음에서 홀연히 생겨나는 삶도 없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며 스스로 깨달아 가르치는 올바로 도달된 수행자나 성직자는 세상에 없다.’고 삿된 견해를 갖는다.”


  일찍이 쎄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천국을 어떻게 버려야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려고 하는 하늘사람들이 “삶은 덧없고 목숨은 짧다네. 늙음을 피하지 못하는 자는 조용히 쉴 곳이 없네. 죽음의 두려움을 꿰둟어 보는 자는 행복을 가며오는 공덕을 쌓아가리.”라고 유혹하자 붓다는 단호하게 말했다. “삶은 덧없고 목숨은 짧다네. 늙음을 피하지 못하는 자는 조용히 쉴 곳이 없네. 죽음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는 자는 욕망을 버리고 고요함을 원하리. 쌍윳따니가야 제1권 26쪽


  붓다의 최대의 관심사는 인간의 평화였다. 붓다는 전란의 시기에 왕자로서 당시에 국가 간에 또는 개인간에 죽이고 빼앗고 위증하고 간음하고 폭행하는 위와 같은 모든 것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인간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임을 통찰하고 있었다. 인간의 욕망은 현실적으로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난다. 붓다는 제사주의자들은 세상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는 욕망에 사로잡혀있었고, 고행주의자들은 자신의 몸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통찰했다. 욕망으로 존재를 만들어내는 그들에게 평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욕망에 대하여 아무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교의 네가지 거룩한 진리는 세상은 괴로운데, 그 괴로움의 원인이 욕망이고 그 원인을 제거하면 평화가 온다는 지극히 사회적인 메세지였다. 그래서 깨닫고 나서 선언한 여덟가지의 성스러운 삶 가운데 올바른 견해란 바로 이러한 네가지 거룩한 진리에 대한 자각을 의미했으며, 올바른 사유란 탐욕을 여의고, 폭력을 여의고 상해를 여읜 생각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평화를 가져오는 지혜로운 삶이었고 그것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의 시작이자 완성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적인 붓다는 이러한 삶을 어떻게 사건 속에서 실천했을까?

역사적인 사건 속의 붓다

A)  망자의 제사에 관하여 : 쌍윳따니까야에 할머니 Ayyaka: SN. I. 96;雜阿含 46권 6(大正 2. 335b, 잡1227) 참조
라는 경을 보면, 빠쎄나디 왕이 사랑하는 할머니가 죽자 대낮에 집무를 포기하고 붓다께 달려와서 “세존이시여, 나에게 할머니는 몹시 사랑스러운 분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값비싼 코끼리를 주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게 할 수 있었다면 나는 값비싼 코끼리를 주어서 할머니를 돌아가시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내가 값비싼 말을 주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게 할 수 있었다면 나는 값비싼 말을 주어서 할머니를 돌아가시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내가 가장 좋은 마을을 주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게 할 수 있었다면 가장 좋은 마을을 주어서 할머니를 돌아가시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내가 한 성을 주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게 할 수 있었다면 그 성을 주어서 할머니를 돌아가시지 않게 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붓다는 댓가를 바라는 제사장처럼 빠세나디왕의 욕망을 부추기며 그를 위로하여 하늘나라를 약속하지 않았다. 붓다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대왕이여, 뭇삶은 죽어야 하는 것이고 죽음을 끝으로 하는 것이며 죽음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붓다의 이 말은 빠세나디 왕이나 자신에게 욕망여읜 지혜를 일깨우는 말이었다. 뿐만아니라 절대권력을 가진 대국의 왕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타적인 자비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동한 빠쎄나디 왕은 붓다를 극찬하면서 “세존이시여,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던 일입니다.”라고 극찬을 한다. 붓다의 답변은 이것만으로 보면 허무주의적인 단멸론을 주장한 것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오해는 역사적인 사건의 맥락에서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당시에 제사장들은 사람이 죽는 것을 기회로 하늘나라를 약속하며 제사를 통해 막대한 부를 누리고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붓다는 죽음은 끝이지만 저 세상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좋은 일을 해서 내세를 위해 공덕을 쌓으면, 공덕은 저 세상에서, 뭇삶들의 의지처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좋은 일을 했다면 저 세상에서 복락을 누린다고도 말할 만한데, 왜 붓다는 그러한 말을 하지 않고 “뭇삶의 의지처”가 된다고 말했을까. 복락을 누린다는 말은 댓가를 바라고 선을 행하는 잘못된 공덕사상을 유포시킬 뿐만 아니라 축복에 대한 댓가를 노리는 제사장의 탐욕스러운 말이 될 수가 있다. 욕망을 여읜 지혜에 맞지 않는 말이다. 이처럼 붓다의 말씀은 역사적인 사건속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사나 공덕이나 선행이나 욕망을 여읜 사유에 대하여 깊이 있는 사유를 할 수가 없고 해석학적으로 많은 잘못을 낳을 수 있다. 그래서 붓다는 인색함 Macchari:SN. I. 18;雜阿含 48권 22(大正 2. 354c, 잡1288) 참조
이란 경에서 “벼이삭을 모아 아내를 부양하고 조금 있어도 보시하는 사람은 가르침을 실천하네. 천 사람이 십만의 보화로 재를 올려도 그러한 보시에 비해 조금도 가치도 없네.어떤 사람은 부정하게 살면서 보시하니 상처내고 죽이고 또한 괴롭히네. 그 보시는 눈물과 상처로 얼룩진 것이며, 올바른 보시로서 가치가 없네. 천 사람이 십만의 보화로 재를 올려도 그러한 보시에 비해 조금의 가치도 없네.”라고 말한다.


B) 부처님은 불사의 존재라는 것에 대하여 : 우리는 태어남이나 죽음을 직접체험하지 못한다. 자신의 죽음을 결코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항상 타자의 죽음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늙음을 통해서 체험되는 것이고 죽음은 그것에서 추론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무상이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늙음에 당면하면서 일 것이다. 여래가 사후에 존재한다던가 존재하지 않는다던가 논쟁한다던가 영원한 붓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진술이거나 신화적인 것이다. 역사적인 붓다는 자신의 늙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함으로서 놀라운 무상의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늙음[Jara] SN. V. 216
의 경을 살펴보자. 붓다는 하루는 서쪽의 양지에 앉아 등을 따뜻하게 하고 계셨다. 마침 존자 아난다가 붓다의 두 손과 두 발을 만지며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이제 세존의 피부색은 청정하거나 고결하지 못하고 사지가 모두 이완되어 주름이 지고 몸이 앞으로 기울고 시각능력, 청각능력, 후각능력, 미각능력, 감촉능력의 모든 능력이 변화의 조짐을 보입니다.” 붓다고싸와 같은 주석가들은 후대에 아난다에게만 유독 붓다가 늙게 보였다고 변명했지만, 역사적인 붓다는 그의 말을 긍정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부끄러워할지어다, 가련한 늙음이여,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늙음이여, 잠시 즐겁게 해주는 사람의 영상, 늙어감에 따라 산산히 부서지네. 백세를 살더라도 결국, 죽음을 궁극적인 것으로 할 뿐, 아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니, 그것은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네.”우리는 종교의 힘이나 철학의 힘을 빌어 영원히 살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욕망을 줄여나가기 보다는 나의 것을 포기하지 않으며 자아를 영속시킨다. 단지 무상을 물리학적인 사물의 변화원리로 이해해서는 욕망을 줄여나가는 평화로운 삶에 이르지 못한다. 붓다는 자신의 늙음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심금을 울리는 무상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무상은 그것을 깨달으면 영원성이 자기 몸 속에서 구현되는 연금술이 아니다.

C) 부처님은 전지자라는 것에 관하여: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인 연기라는 것은 사물의 객관적인 법칙이 아니다. 물리학적이고 수학적인 명제들은 단지 선험적이고 결정론적인 것으로 경험적인 사물의 본질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경험이라는 것은 우리의 욕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라는 것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관계되는 욕망과 그 욕망의 깊이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욕망이야말로 인과적 관계의 끈을 묶는 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기법에 따르면 미래에 대한 예언은 불가능하다. 예지적인 발언이 가능하다면 반드시 조건적이어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경험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베쌀리  Vesali:SN. V. 320;雜阿含 29권 13(大正 2. 207b, 잡809) 참조
경을 보면, 어느날 붓다는 수행승들에게 부정(不淨)에 관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시며 부정에 관한 수행에 대하여 찬탄했다. 그리고 나서 보름 동안을 홀로 명상하러 들어갔다. 그리고는 한사람의 음식을 나르는 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수행승들은 자신의 몸이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혐오스러워 하루에 열명의 수행승이 자결하고, 하루에 스무명의 수행승이 자결하고, 하루에 서른명의 수행승이 자결했다. 그런데 보름 동안의 명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보니 많은 수행승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아난다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난다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붓다는 베쌀리 근처에 사는 모든 수행승들을 강당에 모이게 해서 호흡새김이라는 수행을 하도록 수행방법을 바꾸었다. “호흡새김에 대한 집중을 닦고 익히면 고요해지고 수승해지며, 오염되지 않고 지복에 머물며 악하고 건전하지 못한 현상이 생겨날 때마다 즉시 사라지게 하고 그치게 한다.”라고 부정관에 대한 수행을 상세한 호흡에 대한 명상으로 바꾸었다.

D) 부처님은 육체적인 질병에 대한 의사였는가: 대승불교에는 약사여래경이라는 것이 있어서 붓다에게 빌면 육체적인 질병까지 치유하는 의사로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붓다가 결코 육체적인 질병을 치유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 적이 없다. 몸을 다스리지 않으면 정신이 몸에 속박되고 정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몸이 정신에 속박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잘 새기고 그것에서 욕망이나 탐욕이 일어나는가를 잘 관찰할 것을 가르쳤을 뿐이다. 나꿀라삐따  Nakulapita:SN. III. 1;雜阿含 5권 5(大正 2. 33b, 잡107) 참조
경을 보면, 하루는 늙고 병든 장자 나꿀라삐따가 세존께 찾아와서 하소연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늙고 노쇠하고 고령인데다가 만년에 이르러서는 몸에 병이 들어 끊임없이 병고에 시달립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더구나 세존과 바른 마음을 깨우쳐주는 수행승들의 모습을 결코 친견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오랜 세월 안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십시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러자 붓다는 “장자여, 참으로 그러하구나. 장자여, 참으로 그러하구나. 장자여, 그대의 몸은 허약하고 낡아버렸다. 장자여, 그와 같은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잠시라도 하물며 건강하다고 자칭한다면 어리석은 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그것에 관해 이와 같이 ‘나의 몸은 병들어도 나의 마음은 병들어서는 안 된다’라고 배워야한다. 장자여,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한다.”라고 말하자 장자는 매우 기뻐하며 붓다의 수제자인 싸리뿟따에게 그 방법을 묻고는 마음이 병든다는 것은 몸이나 마음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기게 속박되어 그것이 변화하는 것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몸이나 마음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자각해야한다는 가르침을 깨닫고는 크게 기뻐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병문안 가서 “빨리 쾌차하길 바란다”라는가 “신의 가호가 있기를.” 정도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인사치례를 할 뿐, 역사적인 붓다처럼 명쾌한 병문안을 할 수가 없다. 욕망의 희론에 빠지지 않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을 보면 역사적인 붓다의 진지한 삶의 태도를 볼 수 있다.

E) 붓다는 가르침을 깨달음의 직관으로 교조적으로 전달하였는가, 아니면 깊은 사유와 숙고를 통해 전달했는가? :붓다의 아들라훌라는 밀행제일의 성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출가하였다. 그런데 그는 승단안에서는 거짓말을 잘하는 소년이었다. 우리라면, 거짓말을 잘하는 아들을 두고 미래에 대한 욕망(아들이 불행하지 않게 되길 바라는)을 일으켜서, 현재의 분노를 촉발하면서 단지 꾸짖거나 혼내거나 때릴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즉각적으로 시간과 존재를 일으키고 그것을 욕망과 분노로 채워버린다. 그러나 붓다가 아들을 훈계할 때에는 욕망도 분노가 없이 사유와 숙고를 통해 거짓말을 잘하는 아들을 훈계를 어떻게 했는가가 드러난다.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침의 경 Ambalatthika -Rahulovadasutta:MN. 61
을 보면 그 역사적인 기록이 있다. 붓다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교조적으로 반복한 것이 아니라 깊은 사유와 숙고를 통해 애정어린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가 있다. 붓다는 저녁 무렵에 홀로 명상하다가 일어나 암발랏티까로 존자 라훌라를 찾아갔다. 존자 라훌라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자리를 마련하고 발씻을 물을 준비했다. 세존께서는 펴놓은 자리에 앉으시고 두 발을 씻으셨다. 존자 라훌라는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이 때에 세존께서는 소량의 남은 물을 물그릇에 놓고 존자 라훌라에게 말했다. 라훌라여, 너는 소량의 남은 물이 물그릇에 있는 것을 보고 있느냐? 세존이시여, 보고 있습니다. 라훌라여,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 물과 같이 적다. 그리고는 세존게서는 그 소량의 남은 물을 버리고는 존자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여, 너는 그 소량의 물마져 버려진 것을 보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보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와 같이 버려진다. 그리고는 세존게서는 물그릇을 뒤집어 엎어버리고는 존자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여, 너는 이 물그릇이 뒤집어 엎어진 것을 보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보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와 같이 뒤집어 엎어진다. 그리고는 세존게서는 그 물그릇을 다시 세우고는 존자 라훌라에게 물으셨다. 라훌라여, 너는 이 물그릇이 공허한 것을 보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보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와 같이 공허해진다. 라훌라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거울은 어떠한 목적으로 있는 것인가? 세존이시여, 성찰을 목적으로 있습니다. 라훌라여, 옳다. 성찰하고 또 성찰하여 몸으로 행동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하여 입으로 말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하여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 라훌라여, 네가 입으로 말하고자 하면, 너는 그 입으로 지을 말을 잘 성찰해야한다. ‘나는 입으로 이같은 말을 하고자 하는데, 나의 이 입으로 지을 말이 스스로를 해칠 것이거나 남을 해칠 것이거나 둘 다를 해칠 것이 아닐까. 이 입으로 짓는 말이 불선한 것이어서 그 경과는 괴로움이고 그 결과도 괴로움이 아닐까.’라고. 라훌라여, 만약 네가 성찰해서 ‘나는 입으로 이같이 말하고자 하는데, 나의 이 입으로 지을 말이 스스로를 해칠 것이거나 남을 해칠 것이거나 둘 다를 해칠 것이다. 이 입으로 지을 말이 불선한 것이어서 그 경과는 괴로움일 것이고 그 결과도 괴로움일 것이다.’라고 안다면, 너는 그와 같이 입으로 지을 말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라훌라여, 만약 네가 성찰해서 ‘나는 입으로 이같이 말하고자 하는데, 나의 이 입으로 지을 말은 스스로를 해칠 것도 아니고 남을 해칠 것도 아니고 둘 다를 해칠 것도 아니다. 이 입으로 지을 말은 선한 것이어서 그 경과는 즐거움이고 그 결과도 즐거움이다.’라고 안다면, 너는 그와 같이 입으로 지을 말을 해도 좋다.

F) 붓다는 군대에서 전투정신을 고취하였을까, 호국불교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전사  Yodhajiva:SN. IV. 308;雜阿含 32권 (大正 2. 227b, 잡908) 참조
라고 하는 경을 보면,  전사마을의 촌장이 yodha-jivo gāmaṇi:그는 싸우면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이 책을 편집한 장로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雜阿含32卷 4經에는 戰鬪活聚落主으로 한역되어 있고 別譯雜阿含7卷 2經에는 善鬪將으로 되어있다.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환희하는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라고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자 “촌장이여, 그만두십시오.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회피한다. 이렇게 해서 세 번이나 거듭되는 질문에 말하길 주저하시다가 간절한 요청에 응해 신중하게 대답한다. “촌장이여, 전사가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그의 마음은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을 구타하거나 결박하거나 절단하거나 박멸하거나 없애버려야 한다’라고 저열하고 나쁜 곳으로 향하고 사악한 곳으로 향합니다. 그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자를 적들이 살해하여 죽인다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환희라는 지옥이 있는데 그곳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이 ‘전사는 전쟁터에서 전력을 다해서 싸워야하는데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서 적들에 의해 살해되어 죽임을 당하면 그는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환희하는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라는 견해를 지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견해일 것입니다. 촌장이여, 잘못된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는 지옥이나 축생이나 두가지 길 가운데 하나의 길이 있다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자 전사마을의 촌장은 오랜 세월 동안 속아 살고 기만당하고 현혹된 것 때문에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G) 붓다는 현실의 초월한 자였는가, 현실에 참여자였는가. 여기서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부처님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앙굴리말라는 꼬쌀라 국의 법정직원이었던 아버지 각가의 아들로, 닥샤실라의 대학에서 지적인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 그는 고대인도의 가장 큰 범죄집단에 빠져 그 리더로서 활약했는데 살해자의 손으로 목걸이를 만들 정도로 잔인했으며, 지적이어서 체포를 피하고 빠세나디의 경찰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어느날 앙굴리말라가 싸밧티로 온다는 사람들의 경고- 수행자여 이 길을 가지 마십시오. 수행자여 이 길에는 앙굴리말라라는 흉적이 있습니다. 잔인하여 손에 피를 묻히고 살육을 일삼고 생명에 대한 자비가 없습니다. 그는 마을과 도시와 지방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었습니다. 수행자여, 이 길을 10인 20인 30인 40인이 가도, 오히려 흉적인 앙굴리말라에게 사로잡힐 것입니다.“ - 를 무시하고 붓다는 그를 만나러 나아갔다. 앙굴리말라는 붓다를 보자 ”이 수행자가 혼자서 동료도 없이 죽으로 온다. 내가 어찌 이 수행자의 목숨을 빼앗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 붓다를 쫓았으나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붓다에게 ”서라. 수행자여, 서라. 수행자여‘라고 외쳤다. 그래서 붓다는 가면서 말했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 그래서 자신은 걸으면서 ‘나는 멈추었다. 너도 멈춰라’라고 말한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한 앙굴리마라는 그 연유를 붓다에게 물었다. 붓다는 ‘나는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폭력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존재에 대하여 자제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는 멈추었는데 그대는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감동을 받은 앙굴리말라는 칼과 무기를 내려놓자 붓다는 ’오라 비구여‘라고 말하고는 승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앙굴리말라 승려가 된 그 이유는 붓다에게 설법에 감화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승단에 들어 옴으로서 처벌을 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빠세나디는 오랫동안 범죄자를 찾다가 제따바나 승원에서 가사를 입은 앙굴리말라를 발견하고는 그가 승려인지라 용서했다. 그는 열심히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사밧티의 시민들은 그가 탁발하러 돌아 다니자 돌팔매로 부상을 입혔다. 이 때에 붓다는 “바라문이여 참아라 그대의 악행이 익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랫동안 지옥의 고통을 감수해야한다.”라고 참기를 권했다. 그는 탁발하러 갔다가 싸밧티 시민들의 두 번째 공격으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붓다가 목숨을 걸고 앙굴리말라를 교화한 것은 그를 개인적으로 구원하려는 것보다는 죽이고 빼앗는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려는 붓다의 자비로운 배려에서였다.    

  
사건과 욕망 그리고 인간의 바다
            
붓다는 역사적인 존재로서 일회적 사건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사건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욕망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욕망은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내고 칸트철학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해버리고서는 공간이 무가되어버린다. 따라서 공간이란 감성적 경험의 주관적 인간적인 조건이다. 공간은 외적인 지각의 조건이고, 시간은 내적인 지각의 조건이다.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세계로서 드러난다. 붓다는 그것을 인간의 바다라고 불렀다. 바다 Samudda:SN. IV. 157;雜阿含 8권 (大正 2. 54c, 잡217) 참조
라는 경전을 살펴보자 “시각(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신)은 인간의 바다로서 그 거센 물결은 형상(소리, 냄새, 맛, 감촉, 사물)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형상(소리, 냄새, 맛, 감촉, 사물)으로 이루어진 거센 물결을 견디어낸다면, 그는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나찰이 많은 시각(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신)의 바다를 건너 그것을 뛰어넘어 피안에 도달하여 대지 위에 선 고귀한 자라고 불린다.” 이 경에 따르면, 감각은 인간의 바다인데 여기서 소용돌이는 욕망을 말하고 파도는 분노를 말하고 상어와 나찰은 그것의 위험과 재난을 말한다. 사회적이거나 역사적인 사건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바로 이러한 위험한 사건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위험한 바다를 건너러면 사건을 성찰하여 욕망과 분노를 잠재우고 그 위험과 재난을 극복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교에서 절대신 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에서도 절대적인 공에 대한 직관적인 인식이나 개념적인 사유는 우리의 사유에서 욕망을 배제함으로서 우리 스스로는 면죄부를 받고 사유에서 시간의 축을 제거함으로서 자연적 존재에 관하여만 묻는 즉물적인 사유로 전환된다. 가령 우리가 100원짜리 동전을 관찰할 때에 아마도 직관적인 관찰은 X그램의 구리로 만들어졌다는 본질에 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X그램의 구리라는 것은 단지 신호등 앞에서 빨간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이 멈추어야한다는 신호인 것을 모르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모든 종교에서 신의 초자연성이나 범재신론적인 논의는 이러한 종류의 우리 자신과는 분리된 본질에 관한 즉물적인 사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100짜리 동전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욕망에 의해 부여된 사회적인 가치의 총체적인 수반에 의해 결정되는 교환가치에 있다. 그 가치는 사회적인 사건으로 우리의 욕망에 의해서 시시각각 변화되는 것이다.
  근본법문의 경 Mulapariyayasutta: MN. I. 1;中阿含 106, 想經, 樂想經(大正 1, 596. 851) 참조 ; 이 중요한 경에 대한 해석에 관해는 Bhikkhu Bodhi의 ꡔDiscourse on the Root of Existenceꡕ를 보라.
을 보면, 붓다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숨어있는 내밀한 욕망에 대하여 경고한다.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을 Abhibh:勝者天으로 네 가지 非物質的인 存在를 극복한 것을 의미하고, 無形象의 世界에 속하는 신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Vehapphal와 동일한 세계에 산다.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로 여기고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을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로 여기고 나서,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을 생각하고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 가운데 생각하고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로부터 생각하며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며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에 대해 환락을 즐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나는 말한다.” “거룩한 이는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을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로 곧바로 알고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을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로 곧바로 알고 나서,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을 생각하지 않고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 가운데 생각하지 않고,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로부터 생각하지 않으며,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에 대해 환락을 즐기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그것을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고 나는 말한다.” 여기서 붓다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승리하는 하느님을 믿는 정신현상에 반영된 욕망의 스펙트럼에 관한 것이다. 그 욕망은 충분히 알지 못하고 여김에 근거해서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며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에 대해 환락을 즐기는 정신현상에서부터 곧바로 앎에 근거해서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은 내 것이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승리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들’에 대해 환락을 즐기지 않는 정신현상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으며, 그 경향은 종교적인 현상이나 다양한 사건으로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종교다원주의가 실패하는 이유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대상을 ‘나의 것’으로 절대화하여 그것에 대해 환락을 즐기며 끝없는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는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후대에 형이상학적으로 무아사상으로 체계화되었지만, ‘이것은 나의 것’라는 소유에 대한 욕망은 일상적으로 인간에게 죽이고 빼앗는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사회적인 사건의 근본적인 요인일 뿐만아니라 우리의 감각적인 쾌락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이것은 나의 것이고 나는 영원히 존재한다.’라고 하는 느낌을 종교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영원한 실체가 존재한다라는 견해의 거센물결로 만들어내는 사건의 원인이기도 하다. 영원한 실체에 대한 직관이나 상호의존의 세계를 자연적인 존재라고 인식하여 우주의 본질을 궤뚫었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욕망의 존재에서 벗어난 해탈자라고 인식하는 것은, 오히려 동전의 가치를 구리의 질량으로 파악하는 것처럼, 자신과 세계를 즉물적으로 파악하는 잘못을 제공한다.  
  종교적인 직관은 원천적으로 간절한 기도나 염원의 수직성에 기인한다. 우리가 그러한 정신현상의 수직성 속에서 영원한 신성을 직관한다면, 우리는 욕망에서 해방된 것처럼 그것을 절대화시킬 것이다. 중세기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당시의 성자들은 사람들에게 교회에 모여 기도하고 질병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전염병은 오히려 모여든 모든 사람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삶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곧 인간이 어떤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에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그 욕망 속에 숨어있는 유혹과 재난이라는 사건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직관도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기에 붓다는 욕망과 그 속에 숨어있는 유혹과 재난이라는 사건에 대하여 끝없는 사유와 새김, 그리고 탐구를 통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욕망의 인식과 성찰의 깊이

1973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동물생태학자 콘라드 로렌츠의 ꡔ동물이 인간으로 보인다ꡕ라는 책에서 역자가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것이 이 아기 기러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렌츠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체험담을 기술하고 있다.

“최초의 내 회색 기러기 아기가 세상으로 나왔다. 나는 어미를 대신해서 품어주는 부화기 속에서 기러기 아기가 머리를 반듯하게 쳐들고, 몇 걸음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아기는 머리를 갸웃거리고는 길고 검은 목을 들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 쪽 눈으로 보았다. 대개 새의 무리에서 빠지지 않고 무엇인가 확인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한 쪽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기러기 아기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조금 움직여 말하려는 순간 자그마한 기러기는 긴장을 단숨에 풀고 나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목을 내 쪽으로 쑥 내밀고 아주 빠른 말로 회색 기러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연약한 병아리가 열렬히 삐악삐악하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러나 나는 아기 기러기가 검은 눈동자로 물끄러미 바라볼 때에 도망치지 않고 기러기 아기의 첫인사를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짊을 지게 된 것인지를 몰랐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기러기의 어미역할을 해주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를 붙잡아 하얀 거위의 배아래 밀어 넣었다. 그러나 10분도 못되어 버림받은 것 같이 끼룩끼룩하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불쌍한 아기는 필사적으로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아기는 아직 웅크린 채 제대로 서지도 못한다. 걸음걸이도 불안정하고 비틀거린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 필사적으로 돌진해 올 수 있는 것이다.… 불쌍한 아기는 애처롭게 울면서 헛발을 디뎌 넘어지면서도 계속 내 뒤를 쫓아 달려왔다. 그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날쌔고 결심은 너무 확고해서 분별을 잃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없는 듯 보였다. 그 기러기는 하얀 거위가 아닌 내가 어미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돌부처라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많은 노력과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짊어질 수 없는 십자가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ꡔ동물이 인간으로 보인다.ꡕ 콘라드 로렌츠 지음/김대웅 옮김, 자작나무, 서울, 1995년 155쪽


로렌츠는 이 아기기러기에게 세례를 주고 마르티나라는 이름을 주고는 양자로 삼았다. 마르티나를 어미처럼 보살피는 것만으로 금새 하루가 저물었고 밤에도 항상 곁에서 재워야만 했다. 마르티나는 로렌츠가 어디를 가든 함께 따라 나가겠다고 울어댔고, 그가 곁에 없으면 버림받은 듯 슬프게 울었다. 로렌츠는 낮에는 2분마다 밤에는 한시간마다 자기가 어미라고 확신한 자에게 묻는 마르티나의 “끼르르” 인사에 “끼룩끼룩”하고 답해야만 했다. 이 작은 아기는 어미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면 고독해져서 죽을 때까지 계속 울기 때문이었다.
  기러기 아기가 한 쪽 눈으로 아주 오랫동안 로렌츠를 바라본 것은 ‘코끼리 자취에 비유한 큰 경’ Mahahatthipadopamasutta MN. I. 184; 中阿含 30, 象跡喩經(大正 1, 464) 참조.
에 따르면, 시각능력이 부수어지지 않고 밖에서 형상이 시각영역에 들어오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에 일치하는 의식이 나타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상태에서 물질, 느낌, 지각, 의도, 의식의 집착다발이 생겨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자그마한 기러기가 단숨에 긴장을 풀고 로렌츠에게 목을 쑥 내밀고 아주 빠른 말로 기뻐하면서 열렬히 삐악삐악 소리를 지른 것은 ‘근본법문의 경’  Mulapariyayasutta MN. I. 1; 中阿含 106, 想經, 樂想經(大正 1, 596. 851) 참조
에 따르면, 존재를 존재로 여기고 존재를 존재로 여기고 나서, 존재를 생각하고 존재 가운데 생각하고 존재로부터 생각하며 ‘존재는 내 것이다.’고 생각하며 존재에 대해 즐거워하는 애착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로렌츠는 ‘아기 기러기가 검은 눈동자로 물끄러미 바라볼 때에 도망치지 않고 기러기 아기의 첫인사를 받았다는 것이 얼마만큼 무거운 짊을 지게 된 것인지를 몰랐다.’고 기술하고 있다. ‘코끼리 자취에 비유한 작은 경’ Culahatthipadopamasutta MN. I. 175; 象跡喩經(大正 1, 656) 참조.
의 가르침에 따르면, 로렌츠는 시각으로 형상을 보되 그 인상에 집착하지 말고 그 특징에 집착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시각능력을 수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갈애의 십자가였다. 기러기 아기가 애처럽게 울면서 로렌츠를 찾고, 그가 멀리서라도 보이기만 하면 헛발을 디뎌 넘어지면서까지 로렌츠를 쫓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기러기의 행동이 놀라울 정도로 날쌔고 그 결심이 너무 확고해서 분별을 잃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기기러기에게 이미 로렌츠에 대한 갈애가 생겨난 것을 의미한다.
애틋한 갈애가 생겨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받기 위한 것이다. ‘올바른 견해의 경’ Sammadtthisutta MN. I. 46; 增壹 49⋅5(大正 2. 797) 참조
에 따르면, 갈애가 생겨나면 자양분이 생겨난다. 갈애와 자양분은 수반적 관계이다. 갈애는 자양분과 함께 생겨나는 것이다. 불쌍한 기러기에게 생겨난 자양분은 경전에 의하면, 이미 생겨난 기러기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기러기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자양분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것인데 단지 음식으로서의 먹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경전에 의하면 자양분에는 네 가지가 있다. 그 네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첫째로는 거칠거나 미세한 물질적인 자양분, 두 번째로는 감촉의 자양분, 세 번째는 의도의 자양분, 네 번째로는 의식의 자양분이다. 이러한 자양분들은 이미 생겨난 뭇삶의 생존을 위하고 거듭 태어나게 될 뭇삶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기러기 아기가 로렌츠가 주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물질적인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이고, 애처럽게 울거나 기뻐하는 것은 감촉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이고, 확고한 결심으로 달려오는 것은 로렌츠가 자신의 어미가 되어주길 바라는 것으로 의도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이고, 어미의 존재를 계속 확인하려는 것은 의식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와 같이 숭고한 생존을 위한 갈애에 인과적으로 묶여 있다. 로렌츠가 말했듯이, 불쌍한 아기가 애처롭게 울면서 헛발을 디뎌 넘어지면서도 계속 달려오는 놀라울 정도로 날쌔고 그 결심이 너무 확고해 보이는 그러한 행위는 그가 말했듯이 ‘돌부처라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감동적인 광경’인 것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이러한 갈애, 생명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해 무조건 도덕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갈애가 일어나는 삶의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강조되고 있다.
  모든 생명은 아기 기러기처럼 감각 속에서 욕망에 굶주리고, 욕망 속에서 감각에 굶주리며 고통스러운 삶을 영위한다. 이른 바 욕망의 변증법이다. 맛지마니까야에서는 이러한 인과적인 통찰을 두고 ‘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욕망에 의해 형성되는 고통스러운 삶을 다섯 가지 집착다발[五取蘊]의 존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존재 자체를 고통으로 파악하는 심오한 통찰도 필요하지만, 불교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그 괴로움의 존재가 아니라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이다. 괴로움의 발생은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다발에 욕망하고 집착하고 경향을 갖고 탐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 집착다발에서 욕망과 탐욕을 제거하고 욕망과 탐욕을 버리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로렌츠와 아기 기러기가 삶의 무거운 짊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서로의 괴로움의 발생을 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원적인 통찰을 필요로 한다. 로렌츠가 만약 시각능력에 외부에서 형상이 들어올 때에 발생하는 접촉에 관해 잘 이해하고 그 접촉이 갈애를 촉발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았더라면, 그는 보다 현명하게 대처했을 것이고 많은 고통을 짊어지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아기 기러기가 부화되어 깨어나는 순간에 그가 아기 기러기와 자신과의 시각접촉을 피하고, 기러기와 유사한 삶을 살아가는 거위나 황새와 같은 다른 새들과 똑같이 시각접촉을 나누었더라면, 서로가 그러한 삶의 무게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기 기러기는 거위나 황새를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그 무리에 섞여 자신의 갈애를 소멸시켜 나아감으로써, 갈애가 충족되지 못해 일어나는 탐욕에서 시달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탐욕이 좌절될 때에 원망에 가득 차서 ‘버림받은 것 같이 끼르르하고 우는 소리’를 내면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렌츠 역시 ‘내가 여기 있다.’고 끼륵끼륵하면서 지속적으로 확인시키는 자아의식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올바른 견해의 경’ Sammaditthisutta MN. I. 46; 增壹 49⋅5(大正 2. 797) 참조
은 이와 같이 말한다 :
  “벗들이여, 고귀한 제자가 이와 같이 접촉을 잘 알고, 접촉의 발생을 잘 알고, 접촉의 소멸을 잘 알고, 접촉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잘 알면, 그는 완전히 탐욕의 잠재적 경향을 제거하고 분노의 잠재적 경향을 제거하고 ‘나는 있다’라고 하는 자아의식의 잠재적 경향을 제거하고 무명을 버리고 명지를 일으키며 현세에서 괴로움의 종식을 성취한다.”
  우리는 일상적인 생활에서 갓 태어난 기러기 아기처럼 매순간 세계와의 접촉이라는 경험세계로 뛰어든다. 그 경험세계는 무엇을 토대로 성립하는가? ‘사자후에 대한 작은 경’ Cluasihanadasutta MN. I. 63; 中阿含 103, 獅子吼經(大正 1. 852) 참조
을 살펴보면, 접촉은 여섯 감역을 토대로 하고 여섯 감역을 원인으로 하고 여섯 감역을 기원으로 하고 여섯 감역을 근원으로 삼는다. 여섯 감역은 시각과 형상의 세계, 청각과 소리의 세계, 후각과 냄새의 세계, 미각과 맛의 세계, 촉각과 감촉의 세계, 정신과 사물의 세계를 말한다. 이 경험세계는 쾌락 즉, 잠재적으로 영원한 자아라는 관념과 결합되어 있는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 - 무상한 현실 - 을 피하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욕망이나 갈애라고 부른다. 갈애가 생겨나면서 감각적인 쾌락에 대한 집착이 생겨나고, 우리는 그 감각적 쾌락을 유지하기 위하여 견해에 대한 집착, 미신과 터부에 대한 집착, 자아이론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들이 존재와 시간을 만들어내고 마침내 생노병사라는 현실적 괴로움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맛지마니까야에 따르면, 이러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직면하고 있는 인간의 운명은 아기 기러기의 운명보다도 훨씬 애처롭고 어둡고 비참한 것이다. ‘괴로움의 다발에 대한 큰 경’ Mahadukkhakkhandhasutta MN. I. 83
에서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조건으로 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바탕으로 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속하는 원인에 의해서 가택을 침범하고, 약탈을 일삼고, 도둑질을 하고, 매복했다 습격하고, 남의 부인을 폭행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통치자는 그들을 붙잡아 잔인하기 짝이 없는 형벌 - ① 채찍으로 때리고, ② 몽둥이로 때리고, ③ 곤장으로 때리고, ④ 손을 자르기도 하고, ⑤ 발을 자르기도 하고, ⑥ 손발을 함께 자르기도 하고, ⑦ 귀를 자르기도 하고, ⑧ 코를 자르기도 하고, ⑨ 귀와 코를 함께 자르기도 하고,  두개골을 자르고 뜨거운 쇳덩이을 넣어 죽이고,  살점을 떼어내고 모래로 씻어내어 소라모양으로 빛나는 해골을 만들어 죽이고,  막대기로 아가리를 벌리게 하고 귀를 뚫어 죽이고,  몸을 기름에 적셔 불 위에 태워 죽이고,  손에 기름을 적셔 불로 태워 죽이고,  목에서부터 다리까지 피부를 벗겨 스스로 밟게 하여 죽이는 등의 스물 여섯 가지 형벌을 가해 처벌했다.
  ‘마음의 황무지에 대한 경’ Cetokhilasutta MN. I. 101; 中阿含 206, 心穢經(大正 1, 780), 增壹 51⋅4(大正 2, 817) 참조.
에서는 이러한 위험과 재난에 가득 찬 감각적인 쾌락에 대한 욕망의 세계를 두고 마음의 황무지라고 부른다. ‘고귀한 구함의 경’ Ariyapariyesanasutta MN. I. 160; MN. I. 160; 中阿含 204, 羅摩經(大正 1, 755), 本事經 卷4(大正 17, 679) 참조
은 인간이 감각적인 쾌락의 욕망을 추구하는 마음의 황무지 상태에 대해 ‘왜 나는 스스로 생겨나면서 생겨나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늙어가면서 늙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병들어 가면서 병드는 것을 구하며, 스스로 죽어가면서 죽는 것을 구하는가?’라고 반문한다.
  인간의 비참한 운명과 마음이 황무지에서 유래하는데, 그것은 본래 인간에 내재된 어떤 본성이나 사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 대해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활동을 한 결과이므로 선하고 건전한 인상과 관련된 정신활동을 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맛지마니까야의 메시지이다. ‘사유중지의 경’ Vitakkasatnhanasutta, MN. I. 118; MN. I. 118; 中阿含 101, 增上心經(大正 1, 588) 참조
에서 부처님은 ‘어떤 인상에 관해 그 인상에 정신적 활동을 일으켜 자신 안에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들이 일어나면, 그는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의 활동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한다. ‘가르침의 상속에 대한 경’ Dhammadayadasutta MN. I. 12
에 따르면, 선하고 건전한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은 바로 팔정도를 말한다:
  “탐욕도 악이고 성냄도 악이다. 탐욕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기 위하여 중도가 있다. 그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다. 벗들이여,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고 고요함, 탁월한 앎, 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그것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니 곧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새김, 올바른 집중이다.”
  팔정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새김’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맛지마니까야의 첫 권에는 ‘새김의 토대에 대한 경’ Satipatthanasutta MN. I. 55; 中阿含 98, 念處經(大正 1. 582), 增壹 12⋅1(大正2, 568) 참조.
이 있는데, 이 경은 바로 그 올바른 새김의 방법에 대해 상세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 경은 빠알리니까야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는 설득력 있는 경이다. 몸과 느낌과 마음과 사실에 대한 올바른 새김의 과정은 올바른 도덕적 관계로 열려진 사고를 통해 고요하고 깊이 있게 현존하는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다. 그 때 모든 욕망과 집착의 사고과정은 인지되자마자 버려진다. 마음은 확고하게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성과정에서의 의식은 현재의 주어진 지각현상과 더불어 인식과정이 시작되면서 단순히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숙고에 의해 개념적으로 확산되어간다. 그렇게 되면 현존하는 대상은 개념적으로 확산된 희론적 지각 현상[妄想]에 의해 오염되어 버려서 희론의 구름 속에 비치는 희미한 달처럼 보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을 씻으려고 비누를 찾는데 없었다고 하자. 그의 의식은 얼굴을 씻는 현재에 확고하게 머물 수 없게 된다. 비누가 없다는 생각이 계속 개념적으로 확산되어 ‘도대체 비누는 어디에 있을까? 비누를 한 개 더 사야 되지 않을까? 누가 가져갔을까? 이 세면장에 누가 들어왔나?’등 희론적인 번뇌가 그를 괴롭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자후에 대한 작은 경’ Cluasihanadasutta MN. I. 63; 中阿含 103, 獅子吼經(大正 1. 852) 참조
은 ‘궁극적인 목표는 희론을 기뻐하고 희론을 즐기는 자에게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희론없음을 기뻐하고 희론없음을 즐기는 자에게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렇듯 희론이 우리를 괴롭힐 때에 필요한 것이 새김이다. 새김의 어원인 범어의 스므리띠(smrti)는 ‘기억’을 의미한다. 그 전날 밤에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기억하면 그것이 책상 아래에 있는가, 아니면 거실 탁자 위에 있는가를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미래 속에서 폭풍처럼 일어나는 번뇌에 시달리던 우리의 의식은 다시 확고하게 현재로 회귀될 수 있다. 이것이 새김의 일련의 과정이다. 이와 같이 올바른 새김은 쓸데없이 확장되는 인식과정을 소멸시켜 청정하게 할 때 성립하며 그것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한다.
  그래서 맛지마니까야의 ‘새김의 토대에 대한 경’ Satipahttanasutta  MN. I. 55
에서 우리가 확고하게 현재로 회귀하여 ‘숲으로 가고 나무 밑으로 가고 한가한 곳으로 가서 앉아 가부좌를 틀고 몸을 바로 세우고 앞으로 주의 깊음을 확립하여 깊이 새겨 숨을 들이쉬고 깊이 새겨 숨을 내쉬는’ 자신의 생명현상부터 관찰하고 거기서 걸음마부터 다시 배울 것을 권하고 있다. 온 몸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숨을 들이쉰다고 배우고, 온 몸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숨을 내 쉬는 것을 배워야 하고 몸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들이쉬는 것을 배워하고, 몸의 형성을 고요하게 하면서 숨을 내 쉬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고하고 아름답고 청정한 상태에 이른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유혹과 재난이 있다. 이것을 ‘더러움 없음의 경’ Ananganasutta MN. I. 24
은 경고하고 있다.
  “벗이여, 이 세상에 자신에게 더러움이 없어도 ‘내 안에 더러움이 없다.’라고 있는그대로 잘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기대됩니다. 그는 그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을 쓰게 됩니다. 청정하고 아름다운 인상에 정신을 씀으로써 탐욕이 마음을 덮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는 탐욕을 지니고 성냄을 지니고 어리석음을 지니고 더러움을 지니고 마음을 오염시킨 채 죽을 것입니다. 벗이여, 마치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발우가 깨끗하고 정갈해도, 주인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닦아내지 않고 먼지구덩이에 그냥 방치해 둔다면 벗이여, 그 청동발우는 나중에 점점 더 더러워지고 때가 끼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유명한 ꡔ청정도론ꡕ의 모태가 되는 ‘파발수레의 경’ Rathavinitasutta MN. I. 145; 七車經(大正 1, 429), 增壹 39⋅10 七車(大正2, 733) 참조.
에서도 수행을 통해서 나타나는 청정하고 아름다운 것에 욕망을 일으키지 말고 최종적으로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벗이여, 그처럼 계행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견해를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견해를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의혹을 끊어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의혹을 끊어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길과 길이 아닌 것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길과 길이 아닌 것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길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길에 대한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하는 것에 이르고, 앎과 봄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오로지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기 위한 것입니다. 벗이여, 집착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들기 위해 세존을 따라서 청정한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심에 비유한 작은 경’ Culasaropamasutta MN. I. 30
에서는 “청정한 삶은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계행의 성취를 공덕으로 삼지 않고, 삼매의 성취를 공덕으로 삼지 않고, 앎과 봄을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부동의 마음에 의한 해탈이 있는데, 수행승들이여, 청정한 삶은 이것을 목적으로 하고, 이것을 나무심으로 하고, 이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의 황무지에 대한 경’ Cetokhilasutta MN. I. 101; 中阿含 206, 心穢經(大正 1, 780), 增壹 51⋅4(大正 2, 817) 참조.
은 열심, 전념, 인내, 정근을 통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극복하여 궁극적인 자유를 획득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에 의하면, 궁극적인 자유는 ‘암탉이 계란을 올바로 품고 올바로 온기를 주고 올바로 부화시키는’ 열심, 전념, 인내, 정근을 통해서, ‘병아리들이 발톱이나 부리의 끝으로 껍질을 쪼아서 안전하게 껍질을 깨고 나오는’ ‘올바른 깨달음과 위없는 안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참고문헌

Geschichte Indiens:Hermann Kulke, Dieter Rothermund: Verlag W. Kohlhammer, Stuttgart. 1982
The Historical Buddha:H. W. Schumann:Trns. M. O'C. Walshe:  ARKANA; New York 1989
ꡔHandbuch Philosophisher Grundbegriffe I-IIIꡕ:Her. von H. Krings, H. M. Baumgartener, C. Wild. Kösel-Verlag, Munchen, 1973.
ꡔ쌍윳따니까야전집 1권-11권ꡕ, 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1999-2002년
ꡔ맛지마니까야 1권-2권ꡕ, 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2년.
ꡔ동물이 인간으로 보인다.ꡕ 콘라드 로렌츠 지음/김대웅 옮김, 자작나무, 서울, 1995년
ꡔ거지성자ꡕ, 전재성 저, 서울, 선재, 1999
「대승비불설론과 현대의 경전해석학」; 김용표, 불교평론, 2002년 여름.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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