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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묻는다면

명상수행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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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크리슈나
Homepage   http://blog.daum.net/krishnagii
Subject   명상수행의 바다 <머릿말>
이 책은 <맛지마니까야>의 엔솔로지로 한역에서는 중아함경에 해당하며,
  역사적인 부처님의 중간 크기의 설법을 모아놓은 경전입니다.
초기불교의 경전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체계화시킨
  경전으로 아비달마의 불교나 후세의 대승불교의 경전에 나타난 모든
교리의 원천이 될 만큼 중요한 경전입니다.

  우리가 아는 초기와 대승의 모든 불교 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피안에
도달하면 뗏목을 버리는 뗏목의 비유, 독묻은 화살을 맞은 자가 누가
  화살을 쏘았는지 등을 물어보는 사이에 독이 온몸에 퍼진다고 하는
독화살의 비유, 선을 행하는 것은 악을 행해서 마음에 박힌 큰 쐐기를 작은
  쐐기로 뽑아내는 것과 같으며 선정을 통해 그 작은 쐐기마저 뽑아 버려야
한다는 쐐기의 비유, 가르침을 잘못 파악하는 것은 뱀을 잘못 붙잡은 것과
  같다는 뱀의 비유,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 하느님의
요청에 의해 가르침을 설하게 되었다는 하느님의 비유,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있는 뭇 삶의 수준을 갖가지 연꽃에 견준 연꽃의 비유, 수행을 하면
올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다는
  비유, 나환자가 숯불구덩이에 몸을 지지며 쾌감을 느끼는 것은 지각의
전도를 의미한다고 하는 숯불구덩이의 비유, 생노병사는 천사로서
  우리에게 선행을 일깨운다고 하는 천사의 비유, 여래의 사후에 대하여 불이 꺼지면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조건지어진 것이 소멸되는 것이라는
  불의 비유, 여래는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바닥을 알 수 없어 마치
커다란 바다와 같다는 바다의 비유, 숲 속에 있을 때는 마을은 없는 것으로
  관찰한다고 하는 공의 비유 등은 모두 이 <맛지마니까야> 에 그 원형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이 <맛지마니까야>가 칼 오이겐 노이만에 의해서 독일에서
완역되어 출간된 것이 1902년 이었습니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이 <맛지마니까야>의 영감을 얻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비유를 주요한 모티브로 사용한 데미안을
출간한 것이 1916년이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교적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 싯다르타를 출간한 것이 1922년이었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에서 부처님에 대하여 이와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겸허한 태도로 깊은 생각에 잠겨 길을 걷고 있었다.
그의 조용한 얼굴은 기쁨도 슬픔도 띄지 않고 소리없이 내면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내밀의 미소를 띄고 조용히 침착하게,
건강한 어린아이처럼, 부처님은 걸어가고 있었다.  자신을 추종하는
다른 모든 승려들과 똑같이 옷자락을 걸치고 엄격한 계율을 좇아
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의 얼굴, 그의 걸음걸이, 조용히 내려뜬 시선,
조용히 늘어뜨린 팔, 그 늘어진 팔의 손가락 하나하나까지도 평화를
말하고 완전함을 말하고 있었다.  무엇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요,
흉내내는 것도 아니요, 온 몸은 구원의 안식 속에, 구원의 광명 속에,
범할 수 없는 평화 속에 고요히 숨쉬고 있었다."

이 <맛지마니까야>를 읽는다면, 여러분은 헤르만 헤세가 읽고 감동한
그 부처님의 모습과 수행의 여정, 수행의 시행착오, 수행에서 바른
선정과 삼매, 바른 성찰과 깨달음 어떻게 전개되는지 하나하나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당대의 최고의 스승을 탐방하여
명상수행의 드높은 경지를 몸소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위없는 명상수행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현대과학의 예언자였던 베이컨은 일찍이 학문의 진보가 악마가 아닌
신에게 귀속된다고 말하며, 과학을 위한 적절한 변호를 했습니다.
그는 자연이라는 것은 무한한 지식의 보고이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
자체가 신의 경이로운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세속적인 지식을 위한 그의 위대한 변명은 오늘날도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고 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지식인들이 지식은 세속적이건
세속적이 아니건 인간과 자연 또는 사회의 관련 속에서 객관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이 지금 여기의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존재와 시간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자연과학조차도 인간의 욕망의 그물에 걸리는 대상
만을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설정하는 실험도구나 인식수단이 인간이 쳐놓은
욕망의 그물로서 거기서 생산되는 지식이 본질적으로 인관과 자연에
위해를 가하는 폭력적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세기를 돌아보면 지식이 가장 발전된 나라일수록 가장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개발해왔고 자연적인 감성을 마비시키는 폭력적인 대중
매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끔직한 전쟁,
인류의 파멸을 예고하는 환경오염 등을 주도해왔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욕망의 그물에 걸린 대상에 대한 지식 만을 추구해온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 초기경전의 가르침은 존재와 시간의 지배 아래 놓인 지식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직접적인 인식에 토대를 둔 지식, 현대적인
학문과는 다른 지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것이 바로 인간
자신의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참다운 지식이라는 것은 존재와 시간을 일으키지 않는 지금 여기에서의
자신과 사건에 대한 탐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존재와 시간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와 시간의 그물을 거두고 직접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알아차리고 새길 때에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제어해 가는 윤리적인 지식이야말로 지식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존재론적인 것보다 훨씬 본질적인 것입니다.

참다운 지식은 욕망의 그물인 시공간을 걷어내고 그 위기가 초래하는
분노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사물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지금 여기' 에
관한 지식이며, 그것이야말로 폭발하는 지식의 위기를 통제할 수 있는
명상수행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맛지마니까야> 엔솔로지는 칼 오이겐 노이만 이후 전 세계에서는
두 번재로 완전 복원되어 한국에서 최초로 번역되어 출판된 <맛지마니까야> 전 5권 152권 가운데 학술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29경을 골라
경전의 제목을 내용에 따라 바꾸고 중요한 경구를 앞에 내세워 편집한
것입니다.

그동안 <맛지마니까야> 출간에 후원하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맛지마니까야>를 기초과학분야의 인문학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하여 주신 대한민국학술원에도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2003. 늦가을  
퇴현 전재성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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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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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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