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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묻는다면

명상수행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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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크리슈나
Homepage   http://blog.daum.net/krishnagii
Subject   명상수행의 바다 해제 - 첫번째 (눈앞의 괴로움부터 해결하라)
  오늘날 우리는 지식의 홍수 속에서 곤혹과 고뇌, 불안과 두려움에 직면하고있다.   로져 실룩은 <금지된 지식> 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자연의 비밀에 접근할수록 지식은 해결책보다 오히려 많은 문제거리 만을 던져주는 지점에 도달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인구과잉과 에이즈의 상반된 위협 또한 진보의 결과로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유력한 해석에 의하면, 지구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들이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파괴적인 무기를 만드는 한편, 파괴적인 폭력에 빠져드는 대중매체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모순이 우리를 어찌 야만과 자기부정에 빠져들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과 재앙 속에서 삶을 꾸려왔다.   그러나 끔찍한 전쟁이나 재앙은 인간의 무지에 의해서 발생하였다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지식의 힘을 빌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전쟁이나 재앙은 인간의 야만상태나 무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등에 의해서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과학의 연구, 언론의 자유, 예술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제어하는 인간행위자의 통제를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가?   자유로운 발상과 무한 성장의 분위기 속에서 어떤 개인 또는 제도가 지식의 한계를 진지하게 제기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러한 질문에 내포된 도덕적인 측면을 파악하고 존중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가 추구하는 지식의 자유 속에 내포된 도덕적인 측면을 파악하고 존중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심각한 현대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의 욕망이 일어나기 이전의 '지금 여기'에 관한 지식, 다시 말해서 명상수행을 통한 직접적인 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의 비밀을 알아낸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지향하는대로 대상적인 자연에 관한 지식을 확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파국의 위기에 직면하게 마련이다.   자연과학은 욕망의 수단이라는 그물에 걸린 것만을 파악하는 것이지, 엄밀한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의 '지금 여기'에 관한 학문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관한 학문은 욕망이 만들어낸 시공간을 제거하는 도덕적인 성찰을 기반으로 한 명상수행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명상수행에서는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환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지식을 쌓아가는 것을 배제한다.   그것은 '욕망에 바탕을 둔 사변적 견해'로 간주된다.   이러한 명상수행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몇몇 제자들이 있었다.   그 예로 잘 알려진 고전적인 열 가지의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진 말룽끼야뿟따가 있었다.   <독묻은 화살을 맞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서 어느 날 말룽끼야뿟따는 오후의 명상을 끝내고 부처님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린 뒤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세존이시여, 제가 홀로 명상할 때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여래게서는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   첫째, 우주는 영원한가?   둘째, 우주는 영원하지 않은가?   셋째, 우주는 유한한가?   넷째, 우주는 유한하지 않은가?   다섯째, 영혼은 육체와 같은 것인가?   여섯째, 영혼은 육체와 다른가?  일곱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여덟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아홉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열째,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것이기도 하는가?   여래께서는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 것이 저에게는 못마땅합니다.   저는 세존께 이러한 것을 묻고 싶습니다.   만약 세존께서 저에게 대답을 주신다면 저는 그 밑에 머물러서 거룩한 삶을 따를 것입니다.   세존께서 알고 계신다면 제게 설명해주십시오.   세존께서 모르신다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로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보지 못한다.'
라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입니다."

  말룽끼야뿟따의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로 쓸데없이 마음의 평화를 혼란시키며 시간을 낭비하는 오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부처님은 우선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자의 도덕적인 성찰의 부재를 문제로 삼는다.

"말룽끼야뿟따여, 내가 그대에게 '말룽끼야뿟따여, 와서 내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하라.   나는 그대에게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 설멍할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말룽끼야뿟따여, 그대가 나에게   '세존이시여, 저는 여래 밑에서 거룩한 생활을 영위할 것입니다.
  여래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말룽끼야뿟따여, 나는   '오라. 그리고 내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하라.   내가 그대에게 이러한 문제들을 설명하리라'   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대가 나에게   '저는 여래 밑에서 거룩한 생활을 영위할 것이고 여래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해결해주실 것이다'라고 말한 적도 없다.   어리석은 자여, 이러한 상황 아래서 누가 누구를 거절하겠는가?   말룽끼야뿟따여, 어떤 사람이   '나는 여래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비로소 여래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여래에게서 대답을 못들은 채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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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
  200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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