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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빠알리성전협회의 역사(2) : I.B.Horner
글쓴이 : 칼 노오만(K.R.Norman)


(2) 창설자 이후

1922년 창설자 데이빗의 죽음 이후 그의 아내 캐롤라인이 남편을 대신하여 회장이 되었다. 캐롤라인 자신도 빠알리어 작품들의 수많은 편집과 번역들로, 명예롭게도 상당한 명성을 지닌 빠알리어 학자였다.

1942년 캐롤라인의 뒤를 이은 사람은 로우즈(W.H.D.Rouse)였다. 그는 여러 해 전에 Jataka의 번역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이었으며, 또한 Jinacarita를 편집하고 번역하기도 했었다.

로우즈의 뒤를 이은 사람은 스테데(W.Stede)였다. 그는 Culla-niddesa를 편집했으며 또한 Diha-Nik ya에 대한 두 권의 주석서를 편집했다. 그리고 그는 협회가 <빠알리-영어사전>(Pali-English Dictionary)의 초기 분할 간행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창설자 데이빗과 공동으로 연구했으며 데이빗이 죽은 후에 그 사전을 혼자 손으로 완성했다.

스테데가 1958년에 죽자 1942년 데이비드의 부인 캐롤라인이 죽은 이후 줄곧 간사역을 맡아왔던 I.B.Horner 씨가 1959년에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캠브리지에서 불교의 영향 아래에서의 여성들에 관한 책을 연구하는 동안 빠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59년까지 Majjhima-Nikaya 세 권의 번역뿐 아니라 Majjhima-Nikaya에 관한 마지막(최신의) 주석 세 권과 Buddhava sa에 관한 주석이 이미 편찬되어 나왔다. 이 책들은 그녀가 캠브리지에서 공부할 때 지도교수였던 찰머(Lord Chalmers)가 20년대에 만든 것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기념비적인 번역이 된 Vinaya-Pitaka의 처음 다섯권이 Book of the Discipline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었다.

그녀가 회장으로 선임된 후 곧 Milindapanha의 새로운 번역서를 출판했는데 이는 70여년 전 Sacred Books of the East 시리즈를 목적으로 창설자인 데이비드가 번역한 것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오래된 작품에 대해 새롭게 개선해가는 혼합첨가형식의 발행은 그녀의 회장 재임기간 동안에 빠알리성전협회 출판물들의 전형이 되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거나 아니면 최근에 발견되었던 작품들을 편집하고 번역하는 일을 준비하면서, 협회의 발행목록 가운데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학자들을 고무시켰다. 반면에 그만한 가치가 있거나 아니면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새롭게 편집하거나 번역하여 그러한 부분을 대체함으로써 모든 간행물을 재발행할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위원회에 종용했다.

재정적인 압박을 받을 때에는 부분적으로 발행되어 나왔던 작품들이  하나의 새로운 판형으로 단행본들로 간행되어 나왔다. 앞서 간행된 것들에 결여되었던 색인과 병행문구들의 목록이 첨가되었다.

호너씨 자신이 직접 이러한 출판작업을 지도해 나갔는데 헤르만 콥(Hermann Kopp)박사의 훌륭한 도움을 받았다.

헤르만 콥은 그의 스승인 막스 발레서(Max Waleser)가 죽은 후에 완성된 앙굿따라니까야에 대한 주석에 모범적인 색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테라가타, 율장, 여시어경, 짜리야삐따까에 대한 주석에 색인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곧 선을 보이게 될 Petakopadesa의 재판도 그가 손수 작업한 색인이 첨부된 것이다.

반면에 Atthas lin 의 최근 재판본은 코진스(L.S.Cousins)가 만든 색인을
??? 오식도 있다. 무수히 많던 오식도 재판이 발행되었 때 조용히 교정되었다. 그리하여 초기에 발행되었던 표준판도 초기 빠알리어 연구들의 선구적인 업적들을 대신하여 기대한 만큼 최근의 학문적인 수준들을 향해 계속적으로 끌어올려질 수 있었다.

많은 불충분한 편집들이 보완되어졌는데, 비나야 삐따까와 투빠방사엗 o한 주석의 서론적인 부분의 번역이 실린 새로운 편집뿐 아니라 붓다방사, 짜리야 삐따가, 삐마나바뚜, 삐따바투의 새로운 편집본과 카타바투에 대한 주석을 발행한 자야위크라마(N.A.Jayawickrama)교수가 이 분야에서 특별히 두드러진 인물이었다. 이미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호너씨는 붓다방사, 짜리야 삐따까, 비마나바투의 새로운 번역서들을 출판했다.

호너씨의 회장직은 서양에서 불교에 관해 대단히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던 때와 일치하였다.
그리고 협회의 간행물들의 판매량이 증가함에 따라 학회는 그 범위를 확대할 수 있었다. 이 협회는 사실상 완성된 경전의 원전들과 주요 주석적인 원전들을 편집하려는 기본적인 의도를 가지고, 번역서들과 다른 보조적인 작품들의 출판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1952년 빠알리 삼장의 용어색인의 출판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크루덴(Cruden)의 성경용어색인이 성경의 학문연구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과 똑같은 목적으로 빠알리학자들에 도움을 주려고 의도된 것이었다. 편집자는 하레(E.M.Hare)였는데 그는 이미 숫타니파타와 앙굿따라니까야의 몇권을 번역한 바 있었다. 용어색인에 실린 목록의 대부분은 우드워드(F.L.Woodward)가 작성한 것으로 그는 앙굿따라니까야의 남은 부분을 번역했고 쌍윳따니까야, 우다나, 그리고 테라가타에 대한 주석서들을 편집한 바 있다.

용어색인의 제1권과 분할된 제2권의 세 분책들이 출판된 후 하레가 1958년에 죽자 제2권을 완성하는 임무가 노만에게 넘겨졌다. 그는 운율분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풍부한 각주가 달려 있는 긴 서론이 달리 테라가타와 테리가타의 새로운 번역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1963년과 1973년 사이에 남아있던 6권의 분책들을 발행했다.

용어색인의 제 3권의 작업은 워더(A.K.Warder)에게 넘겨졌다. 쌋다띳싸(H.Saddhatissa)와 피셔(I.Fisher)의 도움으로 다섯분책들이 출판되게 되었고 여섯 번째 분책을 피셔와 스트랜드버그(E.Strandberg)가 작업한 것으로 곧 출판될 예정이다.

워더는 또한 빠알리어를 스스로 읽고 쓰는 것을 배우기 원하는 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마련된 {빠알리어입문}과 {빠알리어운율}이란 책을 발간했으며 붓다다따(A.P.Buddhatta)와 함께 모하비체다니의 편집본을 간행했다. 삿다티사(Saddhatissa)는 우파사카자나랑카라의 편집본과 닷사보디삿투빠띠까타의 번역이 실린 편집본을 출판했다.

불교의 여러 경전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빠알리성전협회는 비록 그것이 빠알리어로 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불교연구를 위해 커다란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을 간행하게 되었다.

학회가 최근에 시리즈의 첫권으로 배정된 J takam l 를 비롯하여 Mah vastu와 Auvar abh sottamas tra, 그리고 Ma ic va  na의 편집과 번역본 및 Vimalakirtinirde a에 관한 라모떼(Etienne Lamotte)의 불어판의 영역본을 포함한 쌍쓰끄리뜨 원전들의 번역들을 내포하고 있다. 1960년부터 협회의 번역물 시리즈 가운데 Khuuddakap  ha의 번역과 그 주석, Nettipakara a, Pi akopadesa, Jinak lam l , 그리고 세권의 Abhidhamma 원전들, 즉 <74>의 Dh tukath , Vibha ga, 그리고 Pa  h na의 제1권이 선보이게 되었다.

Abhidhamma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 점을 감안하여 Guide to Conditional Relations라는 제목이 붙은 Pa  h na 번역서의 제2권이 출판중에 있다. 번역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극소수의 경전 원문들 가운데 하나인 Pa isambhid -megga의 번역이 나나몰리(Bhikkhu  NanaMoli)
에 의해 이루어졌고 워더가 편집을 했으며 지금 출판중에 있다.

이미 언급한 새로운 편집물들 외에도 협회의 원전시리즈 중에는 최근에 많은 다른 새로운 출판이 이루어졌다.   k s라고 불리는 A thakath 에 대한 주석서들을 출판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릴리 드 실바 여사(Miss Lily de Silva)가 D gha-Nik ya-a thakath 에 대한 주석을 편집했다. 미얀마의 두 작품, 즉 P li N ti Text from Burma와 Pa   sa J taka(50개의 위작으로 된 자타카들)의 제1권이 나오게 되었다. 후자의 제2권도 곧 발행될 예정이다.

빠알리성전협회의 위원회가 미얀마, 스리랑카 또는 그 밖의 지역에서 학자들이 만들었던, 그러나 아직도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은 경전들에 대한 주석들의 번역서들을 출판하기 시작함으로서 그 협회의 10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를 맞추어 협회에서 발행한 연재물의 첫 번째 작품으로써 호너씨 자신이 편집했던 Buddhava sa의 주석서를 본인 스스로가 번역했다는 점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petavatthu에 대한 주석을 우 바 키와우(U Ba Kyaw)와 마세필드(P.Masefield)가 번역한 것이다.
Vim navatthu에 대한 주석을 마세필드가 번역한 작품이 곧 나올 예정이며, Ther g th , D gha-Nik ya, Vibba ga, 그리고 다른 원전들에 대한 주석서들을 번역하는 진척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빠알리성전협회가 재정압박을 받고 있을 때 오래된 원전들을 인쇄하여 보존하는 일 이외도 막대한 양의 새로운 출판물을 발행해 낼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호너씨가 협회의 여러 일들을 처리해 나간 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 자신의 한량없는 너그러움과 열정은 다른 사람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크고 작은 꾸준한 헌금의 유입을 가능케 했으며, 그 협회의 일반적 활동에 대한 자금뿐만 아니라 특정 작품들을 출판하는 비용을 충당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빠알리어 작품들을 편집하고 번역하는 일과 협회의 살림을 맡아 운영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호너씨는 불교에 관한 모든 측면들에 대해 저술했는데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인 {원시불교에 있어서 여성들}(Woman Under Primitive Buddhism)이 1930년에 선을 보였고, 이 분야에서 그녀의 두 번째 작품 {완전한 인간에 대한 초기불교의 이론}(The Early Buddhist Theory of Man Perfected)이 1936년에 나왔다. 그녀는 다른 방대한 작품들 외에도 불교연구에 관련된 정기간행물에 광범하게 기고했다. 그리고 그녀가 긴밀한 친분관계를 맺고 있는 전세계 불교학자들의 기념논문집에 기꺼이 자신의 글을 보냈으며, 그들이 런던에 올 때마다 얼마전에는 Dawson Place에 그리고 최근에는 South Lodge에서 그들을 환대해주었다. 1981년 1월에 그녀는 협회의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수년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기획된 협회의 정기간행물의 특별호에 기고하도록 초대된 학자들과 빠알리성전협회 위원회 임원들과의 연합체계를 구축하였다.

1980년 여름, 100주년을 맞기 불과 수개월전에 호너씨는 심하게 넘어져서 외과수술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수술은 그녀로 하여금 당분간 자리에 눕게 하였고, 그 후 베개로 버팀목을 한 채 그녀는 팔걸이 의자에 앉아 지난 날의 자신의 모습을 아주 희미하게 간직한 채 거기에서 다가오는 100주년의 기념일을 맞이하겠다고 그녀의 의사를 보였다.

그녀는 점차 허약해져 감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계속할 것을 고집했으나 그녀의 85회 생일을 보낸 몇 주후 마침내 1981년 4월 25일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빠알리어와 불교연구에 기여한 호너씨의 공로는 막중한 것이어서 단지 그녀의 출판활동에 대한 설명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녀가 다른 사람들 특히 그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고 있는 젊은 학자들에게 기꺼이 베풀었던 도움과 격려의 가치에 대한 평가는 마땅히 고려되어야만 한다. 호너씨의 은혜를 입은 많은 학자들이 그녀의 불교연구업적을 기리는 기념논문집(1974)에 자신들의 글을 기꺼이 기고하였다.

빠알리성전협회의 모든 회원들에게는, 호너씨가 죽기 전에 협회를 위해 해두었던 거대한 양의 작품이 1980년도의 신년 서훈자 명부에서, Order of the British Empire에서 준 상금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은 상당한 위로가 된다. 그녀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녀가 젊은 시절에 만났던 빠알리성전협회의 창시자에 대한 최후의 증언자를 잃게 되었다.

빠알리성전협회는 호너씨가 있음으로 존재했었고, 그녀가 없이는 결코 다시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학문과 아낌없는 성원으로 그가 협회에 기울였던 토대위에 굳게 섬으로써 협회의 제2의 세기초에 들어선 지금 협회는 희망과 낙관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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