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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욕망은 세속적욕망으로 극복할 수 없다
이병욱  (Homepage) 2020-01-15 16:32:26, 조회 : 98, 추천 : 19

세속적 욕망은 세속적욕망으로 극복할 수 없다


한달만에 강독모임에 나갔다. 매달 두 번 있는 모임에서 한번 빠지면 한달만에 가게 되는 것이다. 한달에 한번 있다면 너무 멀게 느껴진다. 매주 있다면 너무 자주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가장 좋은 것은 한달에 두 번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차를 몰고 갔다. 대중교통수단을 활용하면 너무 힘이 든다. 안양 명학역에서 고양시 삼송테크노밸리까지는 50키로가량 되는 먼 거리이다. 전철과 지하철,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지하철은 도중에 환승해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만원전철에 따른 피로감이다. 밤 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 마지막 전철은 꽉 차 있어서 숨쉬기도 불편할 정도로 힘든 것이다.

가는데 두 시간 반 잡아야 하는 것도 차를 몰고 간 요인이 된다. 차로 이동하니 가는데 한시간 반 걸리고, 귀가하는데 한시간 걸렸다. 서울외곡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짧은 시간에 속한다. 혜소스님은 원주에서 온다. 거의 180키로 가까이 된다고 했다. 운전만 세 시간한다는 것이다.

1. 이 생에서 한번은 죽어 보아야

삼송테크노밸리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 도착하니 6시대 초반이었다. 일등으로 온 것이다. 전재성선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번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스리링카순례 가는 날에 장인이 돌아가셨다. 순례도 못 가게 되었고 강독모임도 못 나가게 된 것이다.

전재성선생과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옆에서 죽어 가는 사람이 있어도 자신만큼은 죽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는 것이다. 요양원에 가 보면 내일 모래 죽을 사람을 볼 수 있다. 장례를 치루면 죽은 사람 얼굴을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암시하는 것이라 본다. 그래서일까 맛지마니까야 ‘천사의 경’(M130)에서는 죽어 가는 사람을 천사의 메시지로 보았다. 죽어 가는 자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 것이다.

중병걸려 누워 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은 하늘의 전령사들이나 다름없다. 비참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의 교만과 삶의 교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삶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자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수행승들이여, 무슨 이유로 ‘나는 죽음에 종속되었으며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라고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자주 관찰해야 하는가? 수행승들이여, 뭇삶들은 살아있는 시절에 삶의 교만이 있는데, 그 교만에 빠져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한다. 그가 그 사실을 관찰하면, 살아 있는 시절의 삶의 교만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버려지거나 약해진다. 수행승들이여, 이런 이유로 ‘나는 죽음에 종속되었으며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라고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자주 관찰해야 한다.”(A5.57)


어떻게 해야 잘 죽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전재성선생은 이 생에서 한번은 죽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삶의 과정에서 한번 죽어 보는 것이다. 부정관을 예로 들었다. 열가지 부정관을 보면 시체가 썩어서 백골이 되는 과정이 있다. 이를 관찰로 그치지 않고 실제처럼 자신이 그런 상황이 되어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생에서 한번 죽어 본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새해 첫 번째 니까야강독모임에서는 두 개의 경을 독송했다. 하나는 ‘중병에 대한 성찰’에 대한 경이고, 또 하나는 ‘정법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한 경이다. 각각 앙굿따라니까야 ‘수행녀의 경’(A4.159)과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과 계율의 경’(A4.160)이다.

수행녀의 경에서는 윤회하는 요인에 대하여 네 가지가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음식과 갈애와 자만, 그리고 성적교섭에 대한 것이다. 이 중에서 성적교섭을 제외한 세 가지는 “A에 의존해서 A를 극복한다.”라는 구조로 설명되어 있다.

음식은 이 몸을 지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윤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단지 먹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윤회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기만 한다면 윤회의 요인이 됨을 말한다. 그러나 해탈을 목적으로 한다면 음식은 이 몸을 지탱하는 것이 되어서 “이 몸은 자양분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자양분에 의존하여 자양분을 극복해야 한다.”(A4.159)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재성선생은 윤회의 원인으로서 음식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네 가지 식사(四食)를 설명했다. 음식에는 반드시 먹는 음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먹는 음식인 추세식(麤細食)을 포함하여 촉식(觸食), 의사식(意思食), 식식(識食)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법사는 사식을 설명할 때 아내의 밥상의 비유를 들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일 아침 정성이 가득한 밥상을 올렸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는 “야, 이 도둑놈아! 밥만 먹고 사냐?”라며 화를 냈다. 부부사이에 밥만 먹고 살 순 없을 것이다. 아내의 눈에는 밥만 먹는 남편이 밥도둑처럼 보였을 것이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동물처럼 기계적으로 먹기만 하지 않는 것이다. 느낌으로 도 먹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디가니까야 ‘하느님의 그물의 경’(D1)을 보면 기쁨을 먹고 사는 존재가 있다. 우주 성겁기에 색계에 태어난 존재에 대하여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기쁨을 먹고 살고 스스로 빛나고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영광스럽게 살면서 오랜 세월을 산다.”(D1.38)라고 했다.

색계 존재는 남녀구별이 없다. 선정을 닦은 과보로 태어나기 때문에 매우 청정한존재이다. 몸은 있긴 있지만 오감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각과 청각과 촉각만 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내장도 없고 남녀구분이 없기 때문에 생식기도 없다. 색계 존재는 빛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그래서 하늘을 날아 다닌다. 또 색계존재는 기쁨을 먹고 산다. 이처럼 기쁨을 먹고 사는 존재는 느낌을 먹고 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촉식(passo āharo)에 해당될 것이다.

3. 세속적 욕망은 세속적욕망으로 극복할 수 없다

수행녀의 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은 성적교섭에 대한 것이다. 음식과 갈애, 자만은 “A에 의존해서 A를 극복한다.”라는 구조로 설명되어 있는데 성적교섭에 대해서는 이런 구조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누이여, 이 몸은 성교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성교를 법도의 파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4.159)라고 되어 있을 뿐 이후에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만일 성교에 대해서도 “A에 의존해서 A를 극복한다.”라는 구조로 설명되려면 “성교에 의존해서 성교를 극복한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율장에서는 출가자에게 성접교섭을 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 출가자가 성적교섭을 하면 바라이죄가 되어서 승단에서 추방당한다. 그럼에도 수행녀의 경을 보면 어느 비구니가 아난다 존자를 자신의 침실로 초대했다. 중병에 걸려 아프다는 핑계를 댄 것이다. 이는 경에서 아난다가 비구니 처소에 이르자 비구니가 “머리를 감싸고 침상에 누웠다.”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경을 보면 비구니는 아난다를 유혹하려 했던 것 같다. 초기경전을 보면 아난다 존자는 잘생긴 미남형이고 아는 것도 많아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아난다에게 특별하게 당부했다. 여인을 쳐다 보지도 말고, 쳐다 보았다면 말 하지 않고, 말 했다면 사띠를 확립하라고 했다.

아난다는 비구니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 중에는 아난다를 사모하는 비구니도 있었을 것이다. 수행녀의 경을 보면 비구니는 상사병에 걸린 것 같다. 그래서 수행승을 시켜 중병에 걸렸다고 거짓으로 말하고 아난다의 방문을 요청한 것이다.

아난다는 비구니의 의도를 알아차렸던 것 같다. 네 가지를 말 했는데 가장 나중 것은 성교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성교에 의존해서 성교를 극복한다.”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갈애의 의존해서 갈애를 극복할 수 있다. 갈애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출세간에서는 보다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일어난 현재의 갈애를 통해 윤회의 뿌리가 되는 이전의 갈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 현재의 갈애는 비록 궁극적으로는 악하고 불건전한 것이지만 해탈에 기여하는 것이므로 섬겨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결생(paṭisandhi)을 초래하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그 현재의 갈애마저 극복해야 한다.”(Mrp.III.136)라고 했다.

출가자는 궁극적으로 해탈과 열반을 지향한다. 이때 갈애는 해탈과 열반을 지향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갈애는 해탈에 이르면 버려져야 한다. 그래서 “이 몸은 갈애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갈애에 의존하여 갈애를 극복해야 합니다.”(A4.159)라고 말한 것이다. 자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난다는 상사병에 걸린 비구니에게 네 가지를 들어 법문해 주었다. 이 몸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음식이 윤회의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이 몸이 있어서 해탈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자양분에 의존하여 자양분을 극복합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갈애나 자만도 마찬가이다. 마치 독을 독으로써 제독하는 방편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성교만큼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알코올중독자에게 ‘술에 의존하여 술을 극복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세속적 욕망은 세속적욕망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말한다.

4. 진정한 참회에 대하여

아난다의 법문이 끝나자 비구니는 다음과 같이 참회했다. 비구니는 “존자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해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존자여,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못을 잘못으로 알고 참회하오니,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A4.159)라고 말했다.

참회를 하면 받아 주어야 한다. 다만 진정한 참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리로 참회하는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요즘 같으면 문자나 이메일로 참회하기도 하는데 진정한 참회라고 볼 수 없다. 당사자에게 직접 찾아 가서 참회하는 것이다. 또한 대중 앞에서 참회하는 것이다.

참회는 자신이 판단하여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바라는 것이다. 비구니는 아난다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못을 잘못으로 알고 참회하오니,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여기서 키워드는 “잘못을 잘못으로 알고”라는 말이다. 잘못 한 줄 알기 때문에 참회하는 것이다. 그래서 참회죄(pācittiya)에 대하여 “여러분, 나는 재가 든 자루로 맞아야 하는, 비난을 받을 만한 악한 업을 지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그 대가를 달게 받겠습니다.”(A4.242)라고 했다. 진정한 참회는 재가 든 자루로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5. 어리석은 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참회와 관련하여 질문이 있었다. 어느 참석자는 모임에서 보기 싫은 사람과 말다툼한 것에 대하여 말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불선업만 쌓게 되었는데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묻는 것이었다. 이에 전재성 선생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멧따경에 있는 것처럼 “모든 님들은 행복하여 지이다.(sabbe sattā bhavantu sukhitattā)”(Stn.147)라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건이 필요 없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행복하기를 바랬을 때 원한 맺힌 자도 해당될 것이다. 이렇게 모든 존재들에게 한량없는 자애와 연민의 마을 내었을 때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그래서 자애를 닦으면 ‘자애에 의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재성선생은 고귀한 침묵을 지키라고 했다. 이에 대한 예로서 범벌(梵罰: brahmadaṇḍa)를 말했다. 부처님의 마부 출신으로 안하무인격으로 말썽을 부린 찬나에게 내린 벌이다. 아무에게도 찬나에게 말을 걸지 않게 하는 것이다. 요즘말로 왕따에 해당된다.

모임이나 단체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그것은 “저 사람 때문에 안 나갑니다.”라는 말이다. 그 사람 꼴 보기 싫어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사람 보기 싫어서 나가지 않는다면 자신만 손해일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것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법구경에서도 “더 낫거나 자신과 같은 자를 만나지 못하면, 단호히 홀로 가야하리라. 어리석은 자와 우정은 없으니.”(Dhp.61)라고 했다.

진리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도반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도반은 청정한 삶의 전부와도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어리석은 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단지 연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뿐 사귀지도 말고 가까이하지도 말아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와 우정은 없다.’라고 한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는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어렵다. 충고를 충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욕으로 받아들여 더욱 더 화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허물을 지적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잘못을 했으면 참회해야 한다. 그것도 문자나 대리가 아닌 당사자에게 직접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선생은 고귀한 침묵을 유지하라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며 연민의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6. 모직물이 가로와 세로로 잘 짜여 진 것처럼

금요일 저녁을 불금이라고 한다. 불타는 금요일 밤인 것이다. 예전에는 토요일 저녁이 환락의 시간이었으나 주오일제 영향으로 인하여 금요일로 바뀐 듯하다. 불타는 금요일 밤에 강독모임이 있었다. 불금날에 참석자들은 가르침을 독송하고 가르침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며 보냈다.

니까야는 한구절 한구절 의미가 있고 심오하다. 경에 쓰여 있는 것처럼 니까야는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을 갖추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침”(A4.150)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선생은 “니까야는 마치 모직물이 가로와 세로로 잘 짜여 진 것처럼 조직적이고 체계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전재성선생은 현재 자따까 번역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 2년 걸릴 것이라고 한다. 다른 경전과는 달리 매우 재미있다고 말한다. 율장 개정증보판은 인쇄 들어 갔다고 했다. 봉정식은 3월 20일 양산 통도사에서 갖는다고 했다. 통도사는 금강계단이 있는 불보종찰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개정증보판은 부기가 포함된 통합본이다.

다음 강독모임은 2월 28일(금)에 열린다. 전재성선생이 하와이에서 가족과 함께 한달 보내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한달가량 하와이에서 보내는데 그곳에서도 번역작업 한다. 또 그곳 교민들을 위한 강연도 한다. 다음 모임까지 긴 방학기간이다.


2020-01-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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